2018년 개봉한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사(On the Basis of Sex)'는 단순한 전기영화를 넘어 한 여성이 어떻게 미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펠리시티 존스가 연기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개인의 의지와 신념이 얼마나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목격하게 된다.브루클린에서 시작된 꿈1933년 3월 15일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삶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대공황이라는 암울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아버지는 모피상을
퇴직 이후의 삶을 지탱하는 첫 번째 조건은 돈이 아니라 몸이다. 퇴직 직후의 공백기 동안 사람들은 시간의 여유보다 건강의 변화를 더 뼈저리게 느낀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 몸이 편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때부터 불규칙한 식습관과 느슨한 생활리듬이 몸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국민건강보험공단(2024)의 통계에 따르면 60세 이상 신규 당뇨 진단자는 최근 5년간 34% 증가했고, 고혈압 환자는 10년 새 두 배로 늘었다.퇴직과 동시에 활동량은 줄고 스트레스의 방향이 바뀌며 체력 저하가 가속화되기 때문이다. 결국 몸의 나이는 자연의
한 남자의 선택이 바꾼 세상2013년 홍콩의 한 호텔 방에서 세계를 뒤흔들 폭로가 시작되었다. 에드워드 스노든이라는 이름의 NSA 계약직 직원이 다큐멘터리 감독 ‘로라 포이트러스’와 가디언 기자 ‘글렌 그린월드’에게 루빅스 큐브 속에 숨겨진 SD 카드를 건넨 순간이었다. 그 작은 메모리 카드 안에는 미국 정부가 전 세계 시민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증거들이 담겨 있었다.올리버 스톤 감독의 2016년 작품 '스노든'은 이 역사적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게 추적한다. 영화는 2004년 특전부대를 꿈꾸며 군에 입대했던 젊은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2019년 작품 ‘조조래빗’(Jojo Rabbit)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를 배경으로 한 성장 드라마로, 여러 중요한 주제들을 풍자와 유머를 통해 다루고 있다. 나치를 소재로 한 영화이지만 유쾌함이 담겨 있고, 그 유쾌한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올 때마다, 가슴 한편에서는 먹먹한 감정이 올라온다. 이 영화는 마치 쓴 약을 달콤한 설탕으로 감싼 것처럼, 무거운 역사적 진실을 10살 소년의 순수한 시선으로 포장해 우리에게 건넨다.어린이의 눈으로 본 전쟁의 진실조조는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을 닮아있다. 어른들의 말을
2024년 12월 개봉한 영화 '대가족'(對家族, about the family)은 양우석 감독이 처음 시도한 가족 코미디로, 우리 사회에 "이 시대에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맛집 '평만옥'을 운영하는 함무옥(김윤석)과 승려가 된 그의 아들 함문석(이승기), 그리고 갑작스럽게 나타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전통적 가족 개념을 넘어선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탐구한다.가족관계의 패러다임 전환한국 사회의 가족 개념은 지난 수십 년간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전통사회에서는 혈연과 혼인을 기반으로 한 확대가족이
퇴직을 앞둔 사람들에게 “당신의 경력을 한 줄로 말해보라”고 하면, “그냥 묵묵히 일만 했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 짧은 말 속엔 위기 대응과 협업, 관계 조정의 순간이 응축되어 있지만, 문제는 그 길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이며 바로 여기서 경력의 재구성이 시작된다. 이는 이력서 재작성보다 더 깊은 작업, 과거의 경험을 의미로 재편해 미래의 자산으로 전환하는 사고의 기술이다. 퇴직은 종결이 아니라, 쌓아온 경력을 다시 편집할 ‘두 번째 저작권’의 시점이다통계청 「고령층 경제활동조사(2024)」에 따르면 55세 이상 근로자의 68%가
2021년 이준익 감독이 선사한 영화 ‘자산어보’는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전의 유배 생활을 통해 진정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 그리고 학문의 본질적 가치를 담아낸 수작이다. 설경구와 변요한의 섬세한 연기로 구현된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 영화를 넘어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깊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줄거리영화는 1801년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인해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설경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천주교 신자라는 죄목으로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섬에 도착한 그는 처음에는 절망과 체념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성품의 정약전
퇴직 후 첫 월요일 아침, 익숙한 알람이 울리지 않는 침묵 속에서 낯선 불안이 스며든다. 30년 넘게 회의와 보고서, 조직의 목표 속에서 살아왔던 한 사람은 이제 아무도 자신을 부르지 않는 하루를 맞는다. 손에는 시간이라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그 자유는 오히려 공허하다. 그는 문득 자신에게 묻는다. “이제 나는 누구인가?” 직함이 사라지는 순간, 역할로 정의되던 자아는 방향을 잃는다. 퇴직은 단순히 일의 끝이 아니라, 존재의 정체성을 다시 묻는 시간이다.필자 역시 공직에서 퇴직한 이후 오랜 기간 마음의 공백과 싸워야 했다. 매일 아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는 단순한 로드무비가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중산층의 몰락을 배경으로, 밴을 집 삼아 떠도는 현대 유목민들의 삶을 그린 이 작품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프랜시스 맥도맨드가 연기한 주인공 펀(Fern)의 "I'm not homeless, I'm just houseless(나는 노숙자가 아니라 그냥 집이 없을 뿐)"라는 대사는 현대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자, 시스템의 실패에 대한 조용하지만 강력한 저항 선언이다.원작인 제시카 브루더의 『
영국의 거장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는 단순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서,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된 신자유주의 물결의 산물이다. 201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한 명의 평범한 시민이 국가 시스템에 의해 어떻게 절망으로 내몰리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그 폐허 속에서 피어나는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을 탐구한다.줄거리59세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병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질병수당을 신청하지만, 외관상 장애가 없다는 이유로 기계적 심사에서 거부당한다. 더욱이 모든 복지
2024년 상반기 한국 영화계를 뜨겁게 달군 장재현 감독의 '파묘'는 단순한 오컬트 영화를 넘어 한국의 역사적 트라우마와 전통문화의 현재적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한 작품이다. 개봉 일주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화제를 모았던 이 영화는 현재 누적 관객 1000만을 넘어서며 한국영화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줄거리: 과거와 현재의 뒤엉킨 저주영화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부유한 한국계 가문의 후손 박지용의 갓난아들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리면서 시작된다. 현대 의학으로는 규명할 수 없는 원인 모를 증상에 고통받던 가족은
2021년 케빈 맥도널드 감독이 연출한 ‘모리타니안(The Mauritanian)’은 단순한 법정 드라마를 넘어 9·11 테러 이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인권 유린의 참혹한 현실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모하메두 울드 슬라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관타나모 수용소라는 법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진 고문과 불법 구금의 실상을 생생하게 드러낸다.영화는 2001년 9·11 테러 직후 ‘모리타니’에서 평범하게 살던 모하메두 울드 슬라히(타하르 라힘)가 테러 용의자로 지목되어 체포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어떤
퇴직을 앞둔 한 공직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많은데, 막상 연락할 사람은 없습니다.”그의 휴대전화에는 수백 개의 번호가 있었지만, 마음 편히 전화를 걸 상대는 몇 명 되지 않았다. 직장에서의 관계는 직책과 조직이라는 껍질 속에서 유지되었기에, 명함이 사라지는 순간 관계의 절반이 함께 사라졌다. 그는 사회적 역할의 옷을 벗으며, 자신이 얼마나 ‘직함의 관계’ 속에 갇혀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통계청 「사회조사(2024)」에 따르면 60대 이상 인구의 43.7%가 “친구나 지인과의 교류가 거의 없다”고 답했고, 서울시복지재단
2021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애덤 맥케이 감독의 '돈 룩 업(Don't Look Up)'은 단순한 재난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이라는 극한의 위기 상황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무지와 탐욕, 그리고 진실을 외면하려는 집단적 무책임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블랙 코미디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한 두 천문학자의 좌절스러운 여정은 과학적 사실과 진실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상업적 탐욕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가감없이 보여준다.진실을 외면하는 권력의 오만함영화의 주인공인 미시간 주립대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1학년 학생을 방과 후 수업 중 손등을 꼬집어 상처를 입힌 사건에서, 해당 행위를 학교폭력으로 인정했다(서울행정법원 2024. 9. 13. 선고 2024구단51762 판결). 어찌 보면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이 사건은, 우리가 학교폭력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또 그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형식적 요건이 아닌, 실질적 피해와 맥락 중심의 판단이 강조된 이번 판결은, 단지 초등학생 간의 일회적 신체 접촉이 아니라, 학생 보호 제도로서의 학교폭력 규정이
1960년대 미국 버지니아주 햄프턴. 미국과 소련이 우주 개발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던 냉전의 한복판에서, 세 명의 흑인 여성이 역사의 무대에 조용히 등장했다.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2016)는 NASA의 우주 개발 프로젝트에 숨겨진 공로를 세운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의 실화를 바탕으로, 인종차별과 성차별이라는 이중고를 극복한 그녀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려낸다.시대적 배경: 차별이 일상이던 1960년대 미국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 초 미국 남부는 짐 크로 법(Jim Crow Laws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 반세기 동안 축적된 여성 차별의 생생한 아카이브이자, 구조적 불평등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잠식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사회학적 증언이다. 1982년 태어난 김지영의 일생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개별적 불운이 아닌,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해온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차별의 메커니즘이다.태생부터 각인된 차별: 1980년대 남아선호 사상의 그림자김지영이 태어난 1982년은 우연히 선택된 연도가 아니다. 1980년대는 한국 사회에서 남아선호 사상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감독의 2019년 작품 ‘두 교황’(The Two Popes)은 단순한 종교 영화를 넘어 선다. 이 작품은 가톨릭교회 역사상 전례 없는 상황(생존한 전임 교황과 현임 교황이 공존하는)을 배경으로, 진보와 보수라는 상반된 이념이 어떻게 인간의 따뜻함 속에서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철학적 드라마다.두 세계관의 충돌과 융화영화는 2005년 교황 선출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독일 출신의 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와 아르헨티나 출신의 호르헤 베르골리오(프란치스코 교황)는 교황청이라는 무대에서 만나지만, 그들이 대
퇴직은 단순히 직장을 떠나는 일이 아니라, 익숙한 리듬이 한순간 멈추며 삶의 질서가 바뀌는 사건이다. 매일의 출근길이 끊기고, 이름 앞의 직함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이 사회로부터 분리된 듯한 공허함을 느낀다. 공기업의 미래설계센터장을 맡아 수많은 퇴직예정자와 마주한 경험을 통해, 나는 이 시기가 누구에게나 혼란과 재정립의 시간이며 그 1년을 견뎌낸 사람들만이 ‘리셋의 기술’을 익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문제는 제도가 여전히 사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2020년 제정된 「퇴직자 전직지원법」이 50세 이상 퇴직예정자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저녁 7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밤 중 하나를 담았다. 김성수 감독이 연출하고 황정민, 정우성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단순한 정치 스릴러를 넘어서, 한 나라의 운명이 하룻밤 사이에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박정희 대통령이 10.26 사건으로 피격 사망한 후, 한국 사회는 급격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었다. '서울의 봄'이라 불린 짧은 자유화 분위기 속에서 국민들은 진정한 민주화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희망은 전두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