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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 버지니아주 햄프턴. 미국과 소련이 우주 개발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던 냉전의 한복판에서, 세 명의 흑인 여성이 역사의 무대에 조용히 등장했다.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2016)는 NASA의 우주 개발 프로젝트에 숨겨진 공로를 세운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의 실화를 바탕으로, 인종차별과 성차별이라는 이중고를 극복한 그녀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려낸다.

시대적 배경: 차별이 일상이던 1960년대 미국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 초 미국 남부는 짐 크로 법(Jim Crow Laws)에 의한 인종 분리 정책이 여전히 강력히 작동하고 있던 시기였다. 버스 좌석부터 화장실, 식당, 심지어 도서관의 책까지도 '유색인종용'과 '백인용'으로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다. 이는 단순한 분리가 아닌 체계적인 차별이었으며, 흑인들은 열등한 시설과 제한된 기회를 강요받았다.

특히 여성의 사회 진출이 극도로 제한되었던 당시 상황에서, 흑인 여성들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이라는 이중의 장벽에 직면했다. NASA와 같은 최첨단 과학기술 분야는 더욱 그랬다. 백인 남성들이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공간에서 흑인 여성이 설 자리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냉전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있었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 성공으로 '스푸트니크 쇼크'를 겪은 미국은 우주 개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모든 가용한 인재를 필요로 했다. 이러한 절박한 필요성이 전통적인 차별의 벽에 균열을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었다.

세 여성, 각자만의 방식으로 벽을 넘다

첫 번째 인물: 캐서린 존슨(타라지 P. 헨슨)-천재성으로 편견을 무너뜨리다

캐서린 존슨은 6세에 흑인 여성 최초로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할 정도의 수학 천재였다. 영화에서 그녀는 NASA의 우주임무그룹(Space Task Group)에 배치되어 복잡한 궤도 계산을 담당한다. 하지만 그녀가 직면한 현실은 가혹했다. 백인 일색의 사무실에서 그녀만이 유일한 흑인이자 여성이었고, 심지어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800미터나 떨어진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까지 뛰어가야 했다.

캐서린의 특별함은 이러한 차별적 상황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능력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그녀는 차별과 직접적으로 맞서기보다는 뛰어난 수학적 재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나갔다. 보안상의 이유로 절반이 가려진 계산식을 받아도 전체 공식을 유추해 내는 그녀의 능력은 동료들을 놀라게 했고, 결국 백인 남성들조차 그녀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두 번째 인물: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 미래를 예측한 선구자

도로시 본은 세 주인공 중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지혜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녀는 흑인 여성 계산원들의 비공식적 리더 역할을 하면서도,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예민하게 포착했다. IBM 컴퓨터가 NASA에 도입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재빨리 포트란(FORTRAN) 프로그래밍 언어를 독학으로 익혔다.

도로시의 혜안은 놀라웠다. 그녀는 "어떤 기계를 만들어 내도 버튼을 누르는 건 사람이 하는 일"이라며 동료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배울 것을 권했다. 실제로 IBM 컴퓨터 운영에 필수적인 프로그래밍 지식을 미리 습득한 그녀는 자연스럽게 전산 부서의 관리자로 승진할 수 있었다. 도로시는 개인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팀원들도 함께 새로운 기술을 익히도록 도왔다.

세 번째 인물:메리 잭슨(자넬 모네)- 용기 있는 도전자

메리 잭슨은 세 주인공 중 가장 직접적이고 공격적으로 차별에 맞선 인물이다. 공학자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필요한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버지니아 공대에 진학해야 했지만, 이 학교는 백인만 입학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포기했을 상황에서 메리는 법정에서 직접 자신의 입학 허가를 요구했다.

법정에서 그녀가 판사에게 한 말은 영화의 명대사 중 하나다. "오늘 보시는 많은 재판 중에 100년 뒤 기억될 재판은 뭘까요? 어떤 판결이 판사님을 최초로 만들까요?" 이 말은 단순한 개인적 요청이 아니라 역사적 의미를 강조한 설득이었다. 결국 판사는 그녀의 입학을 허가했고, 메리는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되었다.

편견과 차별 극복을 위한 각자의 노력

세 여성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차별에 맞섰다. 캐서린은 탁월한 능력으로, 도로시는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와 리더십으로, 메리는 직접적인 도전과 용기로 벽을 허물어 나갔다. 이들의 접근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증명해 나간다는 것이었다.

캐서린은 차별적인 환경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800미터나 떨어진 화장실을 오가면서도 계산 자료를 들고 다니며 시간을 아꼈다. 그녀는 "차별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수학과 우주와 싸웠다." 이러한 접근은 결과적으로 차별을 무너뜨리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도로시는 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넘어서 변화를 선도했다. 컴퓨터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고 스스로 프로그래밍을 배운 것은 물론, 자신의 팀원들도 함께 새로운 기술을 익히도록 도왔다. 그녀의 리더십은 개인적 성공을 집단적 발전으로 확장시켰다.

메리는 제도적 장벽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직접 시도해보는 용기를 보였고, 법정에서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했다. 그녀의 도전은 후배들에게 더 넓은 길을 열어주었다.

백인들의 편견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들

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감동적인 장면은 앨 해리슨(케빈 코스트너)이 해머를 들고 '유색인종 화장실' 표지판을 때려 부수는 장면이다. 우주임무그룹의 책임자인 해리슨은 처음에는 캐서린이 중요한 순간마다 자리를 비우는 것에 불만을 품었다. 하지만 그녀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매번 800미터를 뛰어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한 그는 차별의 상징인 표지판을 직접 파괴한다.

그리고 모든 직원들 앞에서 선언한다. "앞으론 모두 같은 색 화장실을 쓴다. 유색인종 화장실 따위는 없어! 나사에서 오줌 색깔은 하나다!" 이 장면은 실력주의를 추구하는 해리슨이 비효율적인 차별 관행을 철폐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그의 행동은 인종 평등에 대한 도덕적 각성이라기보다는 업무 효율성을 위한 실용적 판단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차별을 철폐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또 다른 중요한 장면은 존 글렌(글렌 파웰) 우주비행사가 캐서린의 계산을 신뢰하는 모습이다. 최첨단 IBM 컴퓨터의 계산 결과에도 의문을 품은 글렌은 "그 흑인 여자가 확인했나?"라고 묻는다. 그리고 캐서린이 직접 계산을 완료한 후에야 안심하고 우주선에 오른다. 이는 능력에 대한 인정이 인종과 성별의 편견을 뛰어넘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커피포트 사건도 주목할 만하다. 처음 캐서린이 백인들이 사용하는 커피포트를 사용하자, 다음 날 '유색인종 전용' 커피포트가 새로 생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캐서린의 능력이 인정받자, 이러한 소소한 차별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져 간다. 백인 동료들이 점차적으로 그녀를 팀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메리 잭슨의 법정 장면에서 판사의 변화도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관례적으로 거부할 것처럼 보였던 판사가 메리의 설득력 있는 논리와 열정에 감화되어 결국 입학을 허가한다. 이는 개인의 진정성과 능력이 제도적 차별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해리슨이 캐서린을 관제실에 남게 하고 그녀를 동등한 팀원으로 대우하는 장면 역시 중요하다. 처음에는 필요에 의해 그녀를 받아들였던 해리슨이, 결국 그녀를 한 인간으로서 진정으로 존중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적 의미와 메시지

'히든 피겨스'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히 과거의 차별 극복담에 그치지 않는다. 이 영화는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차별과 편견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성별, 인종, 출신, 학벌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여성의 성공 방정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개인의 뛰어난 능력 개발, 변화에 대한 민감한 감각과 적응력, 그리고 부당한 현실에 맞서는 용기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이들이 보여준 '실력으로 말하기' 전략은 현재의 직장인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또한 해리슨과 같은 권력자들의 역할도 주목할 만하다. 차별을 철폐하는 것은 피해자들만의 몫이 아니라, 기득권층의 인식 변화와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해리슨이 화장실 표지판을 부순 것처럼, 제도적 차별을 실질적으로 철폐하기 위해서는 권한을 가진 사람들의 결단이 중요하다.

'히든 피겨스'는 결국 희망의 이야기다. 아무리 견고해 보이는 차별의 벽도 개인의 노력과 사회의 변화 의지가 결합되면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캐서린, 도로시, 메리가 NASA에서 이룬 성취는 단순히 개인적 성공을 넘어서 후배들과 사회 전체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차별에 맞서는 방법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캐서린처럼 묵묵히 실력으로 증명하는 것이, 때로는 도로시처럼 미래를 준비하며 동료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때로는 메리처럼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히든 피겨스'는 숨겨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가 가진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고 발휘할 용기를 준다. 차별과 편견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이들의 용기 있는 도전과 묵묵한 노력은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회평론가/(전)인천대 교수/사회학 박사.사회복지학 박사/논설위원
사회평론가/(전)인천대 교수/사회학 박사.사회복지학 박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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