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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선택이 바꾼 세상

2013년 홍콩의 한 호텔 방에서 세계를 뒤흔들 폭로가 시작되었다. 에드워드 스노든이라는 이름의 NSA 계약직 직원이 다큐멘터리 감독 ‘로라 포이트러스’와 가디언 기자 ‘글렌 그린월드’에게 루빅스 큐브 속에 숨겨진 SD 카드를 건넨 순간이었다. 그 작은 메모리 카드 안에는 미국 정부가 전 세계 시민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증거들이 담겨 있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2016년 작품 '스노든'은 이 역사적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게 추적한다. 영화는 2004년 특전부대를 꿈꾸며 군에 입대했던 젊은 스노든(조지프 고든-레빗)이 다리 부상으로 전역한 후 CIA에 입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애국심에 불타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싶었던 청년이 점차 정부의 광범위한 감시 시스템을 목격하며 내적 갈등을 겪는 과정이 시간순으로 펼쳐진다.

제네바에서의 첫 해외 근무, NSA 일본 사무소에서의 '에픽 셸터' 프로그램 개발, 하와이 '더 터널'에서 무인기 공격 프로그램의 실체를 깨닫는 순간들을 거치면서 스노든은 자신이 시민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시민을 감시하는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연인 린지 밀스(셰일린 우들리)와의 관계를 통해 그려지는 개인적 갈등은 이 거대한 도덕적 딜레마에 인간적 온기를 더한다.

감시당하는 일상의 정상화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는 스노든이 동료에게 NSA의 감시 능력을 시연하는 부분이다. 무작위로 선택한 개인의 이메일, 통화 기록, 위치 정보가 실시간으로 화면에 나타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감시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단순한 기술 자랑이 아닌 시대적 선언처럼 들렸다.

스노든 폭로 사건이 일어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스스로 더 많은 개인정보를 기꺼이 내어주며 살아가고 있다. 스마트폰 위치 서비스를 켜두고, 소셜미디어에 일상을 공유하며, 편의를 위해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한다. 정부의 강제적 감시를 우려했던 우리가 이제는 기업의 '맞춤형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상업적 감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애국심의 새로운 정의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스노든의 내적 갈등을 그려내는 방식이다. CIA 훈련 과정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며 조국에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던 그가 점차 시스템에 의문을 품게 되는 과정은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나는 조국을 사랑한다. 하지만 정부가 하는 일은 사랑할 수 없다"는 그의 고백은 단순한 개인의 고뇌를 넘어선,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이 가져야 할 비판적 애국심에 대한 성찰이다.

전통적인 애국심이 '국가가 하는 일에 무조건 충성'하는 것이었다면, 스노든이 보여준 애국심은 '국가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견제'하는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 그가 NSA의 광범위한 감시 프로그램을 발견하고도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마침내 폭로를 결심하는 과정은 이런 갈등을 잘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 반국가적 행위로 매도당하는 상황, 공익을 위한 내부고발이 조직 배신으로 치부되는 현실에서, 진정한 애국심이란 무엇인가? 한국 사회 역시 국정원의 개인정보 수집 논란, 코로나19 추적 시스템을 둘러싼 프라이버시 논쟁 등에서 비슷한 딜레마를 경험했다.

기술 권력의 은밀한 진화

영화가 그려내는 또 다른 핵심은 기술과 권력의 결합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형태의 통제다. 스노든이 개발에 참여한 '에픽 셸터' 프로그램은 표면상 중동 지역의 중요 데이터를 백업하는 시스템이었지만, 실제로는 우방국의 인프라에 악성코드를 심어 필요시 마비시킬 수 있는 사이버 무기였다. 하와이에서 그가 목격한 무인기 공격 시스템은 자신이 수집한 정보가 어떻게 실제 살상에 사용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당시로서는 SF 영화 같던 이런 설정들이 지금은 일상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기술 권력은 더욱 교묘하고 광범위하다. 빅테크 기업들은 개인의 검색 기록, 구매 패턴, 인간관계를 분석해 우리의 취향을 예측하고 행동을 유도한다. 추천 알고리즘은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을 은밀하게 조작한다. 정부의 직접적 감시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런 '부드러운 통제'가 우리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투명성과 효율성의 딜레마

영화는 스노든이 홍콩에서 언론인들을 만나 폭로를 결행하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 미국 정부가 그의 여권을 무효화하면서 모스크바 공항에 발이 묶이게 되는 상황까지, 개인이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것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인지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가 제기하는 근본적 질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민주주의에서 정부의 투명성이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가? 국가 기밀과 시민의 알 권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은 여전히 진행형인 숙제다.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이 딜레마를 생생하게 경험했다. 확진자 동선 공개, 백신 접종 현황 추적, 방역패스 시스템 등은 모두 개인 프라이버시를 일정 부분 포기하는 대신 집단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시도였다. 문제는 비상시에 도입된 감시 체계가 평상시에도 그대로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시대 시민의 선택

영화는 스노든의 선택이 옳았는지 그른지를 판단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가 폭로한 감시 체계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정교해졌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감시의 범위와 정도는 스노든이 고발했던 수준을 훨씬 능가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스노든의 선택을 모든 사람이 따라 할 수는 없고, 따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견제가 있을 때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 시민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다양하다. 개인정보보호 설정을 꼼꼼히 확인하고, 불필요한 정보 제공을 거부하며, 감시 기술의 도입과 활용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관련 정책과 법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기업과 정부의 데이터 활용 방식을 견제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다. 문제는 그 기술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느냐다. 영화 '스노든'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이런 질문들을 계속 던지라는 것이다. 편리함과 안전함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비판적 사고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가 보여준 것처럼, 우리 각자가 작은 스노든이 되어 우리 시대의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는 이유다.

사회평론가/(전)인천대 교수/사회학 박사.사회복지학 박사/논설위원
사회평론가/(전)인천대 교수/사회학 박사.사회복지학 박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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