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 Whisk 생성
이미지 / Whisk 생성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는 단순한 로드무비가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중산층의 몰락을 배경으로, 밴을 집 삼아 떠도는 현대 유목민들의 삶을 그린 이 작품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프랜시스 맥도맨드가 연기한 주인공 펀(Fern)의 "I'm not homeless, I'm just houseless(나는 노숙자가 아니라 그냥 집이 없을 뿐)"라는 대사는 현대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자, 시스템의 실패에 대한 조용하지만 강력한 저항 선언이다.

원작인 제시카 브루더의 『노매드랜드: 21세기 미국의 떠돌이 노동자들』은 저자가 수년간 노매드들과 함께 생활하며 기록한 논픽션이다. 클로이 자오는 이 실제 이야기를 영화화하면서도 다큐멘터리의 객관성과 극영화의 서사성을 절묘하게 결합시켰다.

프랜시스 맥도맨드는 이 작품으로 『파고』(1996), 『쓰리 빌보드』(2017)에 이어 세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는 현존하는 배우 중 최다 수상 기록이며, 그녀의 연기가 얼마나 일관되게 뛰어난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노동의 불안정화와 유랑화

영화 속 펀은 아마존의 계절 노동자로 일한다. 과거에는 안정적인 직장이 곧 개인의 정체성이자 사회적 지위를 의미했지만, 이제 노동은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한 생존 수단으로 전락했다. 펀과 같은 노매드들은 임시직과 계절직을 전전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심지어 60대 노년층조차 비인간적이고 경쟁적인 노동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한국의 고령 노동자들은 택배 기사, 경비원, 청소 등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에 몰려있다. 2025년 기준으로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39.8%로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한다. 이는 OECD 평균인 13.5%의 3배에 달하는 수치로 노인 10명 중 4명이 빈곤 상태에 처해있다는 의미다.

노동의 불안정화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를 넘어 개인의 정체성 혼란과 사회적 소속감 상실로 이어진다. 영화 속 노매드들처럼 한국의 불안정 노동자들도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다.

주거권의 붕괴와 노숙의 일상화

영화는 '집(house)'과 '홈(home)'의 차이를 섬세하게 다룬다. 펀은 물리적인 집을 잃었지만 밴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자신만의 홈을 구성해 간다. 하지만 이는 개인적 선택이라기보다는 구조적 압박의 결과다. 미국에서 모기지 파산, 렌트비 상승, 부동산 버블로 인해 수많은 중산층이 노숙자 또는 노매드가 되었다.

주거권은 한국에서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전세 사기 피해자만 3만 명을 넘어섰고, 이 중 75%가 20~30대 청년층이다. 피해자의 60%가 수도권에 거주하며, 대부분이 다세대, 오피스텔, 다가구주택 등 비아파트 거주자들이다.

더 심각한 것은 '비주택 거주자'의 증가다. 고시원, 컨테이너, 차박족 등 제대로 된 주거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에게 주거는 더 이상 기본권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자산이 되었다. 영화 속 펀의 밴이 그러하듯,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대한의 존엄을 지키려 애쓰고 있다.

특히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내 집 마련'은 점점 더 불가능한 꿈이 되어가고 있다.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1억 원을 넘어서면서, 중산층조차 '하우스푸어' 상태에 내몰리거나 아예 포기하는 상황이다. 이는 노매드랜드 속 미국 중산층의 몰락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현상이다.

공동체의 해체와 비공식적 연대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노매드들이 서로 음식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며, "언젠가 길 위에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하는 모습이다. 전통적인 가족과 지역 공동체는 해체되었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형태의 연대가 생겨났다. 이는 국가나 시장이 제공하지 못하는 돌봄과 지지를 '약자들끼리' 서로 채워가는 자발적 공동체다.

한국 사회에서도 유사한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전통적인 혈연, 지연, 학연 중심의 공동체는 약화되었지만,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연대가 형성되고 있다. 전세 사기 피해자 모임, 플랫폼 노동자 권익 보호 단체, 1인 가구 상호부조 네트워크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이러한 비공식적 연대는 한계가 명확하다.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고, 개별적 위기 상황에서의 일시적 완충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연대는 시장과 국가가 실패한 자리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소중한 시도임에 틀림없다.

특히 한국의 경우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사회적 고립이 심화되었고, 1인 가구 비율이 33%를 넘어서면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에 대한 갈구가 커지고 있다. SNS의 일회성 관계를 넘어선,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상호부조 관계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존엄을 지키는 삶의 태도: 시혜가 아닌 자립의 의지

영화에서 펀은 여러 차례 안정적인 주거와 일자리를 제안받지만 이를 거절한다. 이는 단순한 고집이나 자존심이 아니라, 시혜적 복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꾸려가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펀의 선택은 비극적이면서도 동시에 주체적이다. 시스템 밖에서라도 자기 삶을 구성하려는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에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개인의 자립 의지를 존중하면서도 구조적 불평등을 해결하지 않으면, 결국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신자유주의적 논리에 빠질 수 있다. 영화 역시 이러한 모순을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한다. 펀의 선택이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것이 과연 진정한 자유인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한국 사회에의 함의: 노매드랜드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노매드랜드’가 던지는 질문들은 한국 사회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급속한 고령화,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 불안정한 주거권, 해체되는 공동체 등 영화 속 미국 사회의 문제들이 한국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한국은 미국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사회 변화를 겪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 OECD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 세계 최저 출산율 등이 그 증거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적인 사회보장제도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우리는 펀과 같은 '한국형 노매드'들의 등장에 대비해야 한다. 이미 차박족, 디지털 노매드, 계절 이주 노동자 등 다양한 형태의 유목적 생활양식이 나타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선택이 진정한 자유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구조적 압박의 결과인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노매드랜드를 넘어서

‘노매드랜드’는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을 날카롭게 포착하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의지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하지만 영화가 제시하는 것은 해법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다.

한국 사회가 진정한 의미의 '노매드랜드'가 되지 않으려면,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면서도 구조적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복지를 늘리는 것을 넘어서, 노동의 의미, 주거의 개념, 공동체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재사유하는 작업이다.

펀의 마지막 대사처럼, 우리 모두는 언젠가 "길 위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만남이 절망 속에서가 아니라, 서로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희망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노매드랜드는 단순히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의 무대인 것이다.

사회평론가/(전)인천대 교수/사회학 박사.사회복지학 박사/논설위원
사회평론가/(전)인천대 교수/사회학 박사.사회복지학 박사/논설위원

 

저작권자 © 경인미래교육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