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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구조와 인간의 허영, 욕망을 3막 구조의 우화를 통해 신랄하게 해부한 작품이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슬픔의 삼각형'은 미간에 생기는 주름을 의미하는 뷰티업계 용어로, 외적 미모에 집착하는 현대 사회의 허상을 함축한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계급의 전복이 일어나도 권력 구조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며, 인간 본성의 모순과 사회 구조의 순환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계급 갈등의 축소판: 패션계에서 무인도까지

영화는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남성 모델 칼과 여성 인플루언서 야야의 관계를 통해 젠더 권력과 경제적 불평등을 다룬다. 칼은 야야보다 수입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성 역할에 따라 데이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불만을 품는다. "우리는 성역할에 갇히지 말자"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야야의 경제적 우위에 의존하는 자신의 모순된 처지를 불편해한다. 이는 현대 사회의 젠더 갈등과 전통적 권력구조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의 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장에서는 2억 5천만 달러 규모의 호화 유람선이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으로 등장한다. 선상에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탑승하지만, 엄격한 계급 구조가 존재한다. 갑판과 객실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부유층 승객들, 이들을 시중드는 백인 승무원들, 그리고 선박 하부에서 청소와 잡일을 담당하는 유색인종 노동자들이 각각 다른 층위에 배치된다. 외관상 화기애애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갑질과 위선이 난무하는 공간이다. 부자들은 빵에 발라 먹는 달콤한 크림 누텔라(Nutella)를 위해 헬기를 동원하고, 수류탄으로 물고기를 잡는 등 돈의 위력을 과시하며 도덕적 해이를 보인다.

SNS: 욕망과 과시의 게이트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야야'는 자신의 외모, 패션, 식사, 여행 등을 SNS에 올리는 것이 생활의 중심이다. 실제 삶보다 ‘사진으로 어떻게 보일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음식도 먹기 전에 ‘사진용’으로 연출하고, ‘브랜드 협찬’이 중심이 되는 일상을 산다. "사는 것"보다 "보이는 것"이 우선인 야야에게 SNS는 과시와 소비의 탈출구이다. 야야는 인스타그램 덕분에 초호화 크루즈 여행을 하게 된다. 이는 "SNS 속 상위 계급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의 실현이다. SNS는 사용자를 소비자이자 동시에 상품으로 만들며, 과시를 통해 끝없는 경쟁과 욕망의 피라미드를 형성한다.

그러나 진짜 생존이 필요한 상황이 되자, 그녀의 SNS 능력은 아무 소용이 없고, 계급 구조는 완전히 뒤바뀐다. SNS는 마치 상류층 일원으로서의 환상을 주지만, 그것은 현실 권력이나 생존 능력과는 무관한 허상이다. SNS가 만든 허구의 권력과 욕망은, 진짜 위기의 순간엔 무너지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감정노동의 본질과 모순: “웃으세요! 팁이 걸려 있어요!”

호화 요트 선상에서 여성 책임자가 선내 서비스팀(청소, 식음료 등)노동자들 에게 교육을 진행한다. “지금부터 웃으세요!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보여줘야 해요. 손님은 언제나 옳고, 그들의 행복이 곧 팁이에요!” 강제로 모두에게 ‘행복한 표정’을 지어보게 한다. 이제 ‘감정’은 더 이상 개인의 내면이 아닌, 상품의 일부로 간주 된다. 사회학자 혹실드가 말한 ‘감정노동’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인간의 감정까지 상품화하고, 위계 속에서 복종을 강요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명백히 억압적인 상황이지만, 거부권이 없는 하급 노동자들은 관리자와 손님의 기분을 위해 연기해야만 한다. 서비스팀은 모두 “가짜 미소”를 지으며 웃지만, 그 안에는 불편함, 체념, 수치심이 감춰져 있다. 잠시 후 갑자기 배에 폭풍우가 닥치고, 손님들이 토하고, 쓰러지고, 배설까지 하면서, 소위 상류층이 말하던 ‘기품’과 ‘격조’는 모두 무너진다. 감정을 억지로 관리하던 노동자들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감정이 폭발한다. 위선적인 계급 구조와 허약한 고객 중심주의가 고개를 치드는 순간이다.

이념 대립의 허상: 선장과 러시아 부자의 풍자적 토론

2장의 클라이맥스는 미국인 사회주의자 선장 토마스(우디 해럴슨)와 러시아 출신 비료 재벌 드미트리 사이의 취중 토론에서 나타난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두 사람은 휴대폰에 저장된 명언들을 인용하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의 어록을 줄줄이 인용하며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러시아 출신 '똥장사' 재벌과,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을 인용하며 서구의 위선을 고발하는 미국 출신 선장의 설전은 근현대 서구 사상사 논쟁 그 자체다.

특히 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는 모든 구멍으로 오물을 쏟아 낸다"는 예언적 구절이 영화 속 승객들의 구토 장면과 상징적으로 연결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들의 현학적 토론이 선내 방송으로 흘러 나가는 동안 승객들은 상한 음식으로 인해 구토와 설사를 하며 바닥을 뒹굴고, 품위를 유지하려던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순식간에 붕괴된다. 감독은 이를 통해 지식인들의 거창한 담론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공허하고 무력한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무인도에서 드러난 인간들의 민낯

3장에서는 유람선이 침몰한 후 무인도에 표류한 8명의 생존자들 사이에서 완전히 뒤바뀐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평소 최하층에 위치했던 필리핀 출신 청소부 아비게일이 유일하게 물고기를 잡고 불을 피울 줄 아는 생존 전문가로 부상하면서 공동체의 절대 권력자가 된다. 돈과 지위가 무용지물이 된 원시 상황에서 '생산수단'을 독점한 아비게일은 자신을 '캡틴'이라 부르라고 요구하며 다른 생존자들을 지배한다.

이 과정에서 칼의 변화는 가장 극적이다. 1장에서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비판하고 평등을 주장했던 그는, 아비게일이 권력을 잡자 생존을 위해 기꺼이 그녀의 말에 복종한다. 야야가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 아비게일을 찾아가 은밀한 거래를 하며, 다른 남성들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굴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그가 이전에 그토록 경멸했던 바로 그 행동이었다. 감독은 이를 통해 개인의 신념과 원칙이 생존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인간이 권력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냉정하게 드러낸다.

마지막 장면의 잔혹한 진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충격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아비게일과 야야가 섬을 탐험하던 중 리조트를 발견하면서 이곳이 무인도가 아니었음이 밝혀진다. 야야는 구조될 수 있다는 희망에 환호하지만, 아비게일의 표정은 어두워진다. 현실로 돌아가면 다시 사회 최하층으로 전락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비게일은 야야를 해치려 하지만, 야야가 "제가 당신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뭘 하면 좋을까요?"라고 묻자 잠시 망설인다. 그러나 곧이어 야야는 "아, 그래 내 비서를 하면 좋겠다"라고 말함과 동시에 아비게일이 쥐고 있던 돌을 허공으로 치올리는 모습으로 영화는 블랙아웃된다. 과연 그 돌은 아비게일 머리 뒤로 버려졌을까? 아니면 야야의 머리 위로 던져졌을까?

이 장면은 두 여성 사이의 연대가 계급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지는 순간을 보여준다. 같은 성별이라는 유대감도, 무인도에서 함께 겪은 경험도 기존 사회 구조의 위력 앞에서는 무력하다. 야야의 마지막 말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지만, 결국 기존의 주종 관계를 재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소비시대 인간상의 허상

‘슬픔의 삼각형’이 그리는 현대 인간상은 소비와 허영에 지배당하는 존재들이다. 패션쇼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구호가 울려 퍼지지만, 정작 좌석 배치는 철저히 위계적이다. 인플루언서 야야는 SNS에 과시용 콘텐츠를 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소비하고, 유람선의 부자들은 돈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한 과시적 소비에 몰두한다.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말한 "상층계급의 두드러진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자각 없이 행해진다"는 통찰이 영화 전반에 걸쳐 구현된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계급 전복이 일어나도 새로운 권력 구조가 다시 형성될 뿐이라는 비관적 현실을 제시한다. 무인도에서의 경험은 일시적인 해방감을 주었지만, 결국 인간은 권력과 위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영화의 제목처럼, 현대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슬픔의 삼각형'이 새겨져 있다. 이는 단순히 외적 노화의 흔적이 아니라, 끝없는 경쟁과 불평등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실존적 고뇌를 상징한다. 감독의 냉소적이면서도 예리한 시선은 관객으로 하여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구조와 인간 본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사회평론가/(전)인천대 교수/사회학 박사.사회복지학 박사/논설위원
사회평론가/(전)인천대 교수/사회학 박사.사회복지학 박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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