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면 친구도 같이 사라진다더니, 정말이더군요.”
퇴직을 앞둔 한 지인의 농담 섞인 말은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직장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숱한 만남과 대화는 명함이 사라지는 순간 자취를 감춘다. 공자는 『논어』에서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 했는데, 현실의 중장년은 벗이 떠나가는 쓸쓸함부터 마주한다. 관계가 흐트러지는 순간, 고립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재취업의 문은 한층 무거워진다.
퇴직 전후 가장 큰 변화는 ‘연락의 단절’이다. 직함과 소속이 있을 때는 언제든 이어지던 관계가, 자리를 내려놓는 순간 뿔뿔이 흩어진다. 늘어난 번호와 두툼해진 명함첩도 정작 필요할 때는 무용지물이 된다. 그러나 이때야말로 다시 다리를 놓아야 할 순간이다. 인맥은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다리가 되고, 다리는 길이 되어 기회의 문을 열어준다.
첫 연락은 담백할수록 좋다. 상대의 안부를 묻고, 내가 현재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만 간단히 전하면 충분하다. 통화는 길어도 5분을 넘기지 않는 편이 바람직하다.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면서도 나의 성실함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연락에서는 내가 참여하고 있는 교육이나 활동을 전하는 것도 좋다. 노력하는 모습을 자연스레 알리면서, 혹시 기회가 있으면 알려달라는 정도의 부탁을 덧붙이면 된다. 중요한 것은 지나친 간청이나 독촉이 아니라, 관계를 가볍게 이어가는 성실한 태도다.
연락의 간격 또한 성패를 좌우한다. 첫 통화 뒤에는 3주 이내 다시 연결하는 것이 기억을 이어주는 데 도움이 된다. 시간이 길어지면 나를 잊기 쉽고, 나 역시 다시 연락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이후에는 가까운 관계와 그렇지 않은 관계를 나누어 리듬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가까운 관계는 자주, 느슨한 관계는 간헐적으로, 관계의 농도에 따라 빈도를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모든 연락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전화를 피하는 듯한 인상, 무심한 대답에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곧바로 거절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불편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내가 처한 상황일 수 있다. 이럴 때는 문자나 이메일로 소식을 전하는 방법이 유용하다. 회신을 강요하지 않기에 상대는 부담을 덜고, 나는 과도한 상심을 줄일 수 있다. 작은 메시지의 리듬이 결국 관계의 끈을 유지하게 한다.
네트워크 관리의 본질은 청탁이 아니라 존재감의 표현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잊히지 않는가에 있다. 『채근담』에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구절이 있다. 이는 퇴직 전후 인맥 관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내가 먼저 진심을 담아 다리를 놓아야, 그 다리 위로 기회와 사람이 건너온다.
실제로 재취업에 성공한 이들의 다수는 지인의 소개나 기존 인맥을 통해 기회를 얻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50세 이상 구직자의 재취업 성공률은 35%에 불과하다. 절반 이상이 단기·비정규직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기술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단절된 네트워크가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본의 경우, ‘실버인턴십 제도’를 통해 퇴직자가 지역 단체와 연결될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미국은 시니어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경험 많은 퇴직자와 젊은 창업자를 연결하고 있다. 이들 제도는 네트워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함으로써 고립을 줄이고 재도약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도 개인적 노력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퇴직자를 대상으로 한 지역 기반 네트워크 프로그램, 직능별 커뮤니티 활성화, 멘토링 연계 플랫폼 등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취업 알선이 아니라 관계 자본을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개인의 다리를 사회적 다리로 확장할 때, 중장년은 다시금 역할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전환이다. 그리고 그 전환의 핵심에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가 있다. 다리를 끊지 않는 사람만이 인생 2막의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다. 물처럼 유연하게 흐르고, 산처럼 오래 지속되는 관계가 결국 우리를 다시 사회와 연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