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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이탈리아 북부의 뜨거운 여름, 17세 소년 엘리오 펄먼과 24세 미국인 대학원생 올리버 사이에 피어나는 사랑을 그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단순한 로맨스 영화를 넘어 인간 존재의 근본적 질문들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루카 과다니노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티모시 샬라메, 아미 해머의 뛰어난 연기가 빚어낸 이 영화는 2018년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당시 22세였던 샬라메는 최연소 남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세계적인 스타반열에 올랐다. 복숭아 과수원에서 로마까지, 6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이들의 사랑은 아름답고 덧없지만, 그 안에 담긴 주제 의식들은 시공을 초월해 관객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는다.

성장의 문턱에서 마주한 사랑의 열병

엘리오의 이야기는 무엇보다 성장과 각성의 서사다. 17세라는 나이는 아이와 어른 사이의 모호한 경계선상에 있다. 엘리오는 지적으로는 충분히 성숙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는 초보자다. 올리버가 전날 밤의 일들을 "그것과 다른 것들"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엘리오는 "어떻게 나도 언젠가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라고 동경한다. 이는 성인 세계에 대한 갈망이자, 자신의 미성숙함에 대한 인식이다.

올리버와의 관계에서 엘리오가 보이는 망설임과 두려움은 첫사랑의 보편적 경험을 넘어선다.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을 느끼며, 동시에 그 지점을 넘고 싶어 한다. 이런 복잡한 감정의 교차는 성장기 특유의 혼란이면서, 동시에 진정한 사랑이 주는 변화에 대한 예감이기도 하다. 엘리오는 올리버를 통해 어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동시에 배운다. 그의 성장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는 용기를 얻는 과정이다.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정체성의 융해와 재구성

영화의 제목이자 핵심 메시지인 "Call Me By Your Name"은 사랑의 가장 본질적 속성을 드러낸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가 되고자 하는 욕망은 플라톤의 『향연』에서 언급되는 "반쪽 찾기"의 현대적 해석이다. 사랑 안에서 개별적 정체성의 경계는 흐려지고, 나와 너는 하나의 존재가 되고자 한다.

엘리오와 올리버 모두 다윗의 별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는 설정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그들이 공유하는 문화적, 종교적 정체성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거울로 인식하게 만드는 장치다. 엘리오가 올리버에게서 자신과 같은 것을 발견하는 순간들은 단순한 동성애적 끌림을 넘어, 자아 인식의 확장을 의미한다. 그는 올리버를 통해 자신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다.

이런 정체성의 융합은 음악을 통해서도 표현된다. 엘리오가 바흐의 곡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주하며 올리버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들은, 같은 멜로디도 연주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각각의 사랑은 그것을 나누는 두 사람만의 고유한 색깔을 갖는다.

엘리오는 올리버를 통해 자신의 성적 정체성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자아 개념을 재구성하게 된다. 그는 여전히 여성에게도 끌리는 양성애적 성향을 보이지만, 이를 혼란으로 여기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욕망이 성별이나 기존의 범주로 규정될 수 없는 복합적인 것임을 받아들인다. 이는 정체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되는 살아있는 개념임을 보여준다.

사랑을 통한 자아 확장

궁극적으로 엘리오와 올리버의 "Call Me By Your Name"은 소유나 동일화가 아닌 상호적 확장을 의미한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상대방을 자신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통해 자신을 확장하는 경험이다. 엘리오는 올리버가 됨으로써 자신을 잃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정체성의 유동성은 현대적 사랑관의 핵심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관계에서 개인은 명확한 역할과 정체성을 유지해야 했다면,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에서는 그런 경계가 의미를 잃는다. 그들은 때로는 스승과 제자, 때로는 동등한 연인, 때로는 서로를 돌보는 보호자가 된다. 이런 역할의 유연성은 사랑 안에서만 가능한 정체성의 자유로운 변주를 보여준다.

시간의 잔혹함과 기억의 영원함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가장 아픈 진실은 시간의 유한성이다. 여름이라는 제한된 시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사랑의 강렬함은 그 짧음 때문에 더욱 빛난다. 하지만 그 찬란함은 동시에 상실의 예고이기도 하다. 올리버가 떠나야 하는 현실, 그리고 그 현실 앞에서 무력한 엘리오의 모습은 젊은 사랑의 숙명적 비극을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벽난로 앞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엘리오의 모습은 이 작품의 정서적 절정이다. 그 눈물은 단순한 이별의 슬픔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변화시킨 사랑에 대한 감사이자,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성숙의 표현이다. 엘리오는 울면서도 그 사랑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그 기억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시간은 잔혹하지만 기억은 영원하다. 엘리오에게 올리버와의 여름은 끝났지만, 그 경험은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음률이 될 것이다. 작품 초반 엘리오의 독백처럼, 그 여름의 모든 것들 - 로즈마리 냄새, 매미 소리, 그해 히트곡들 - 은 영원히 올리버의 색깔로 물들어 있을 것이다. 이는 첫사랑이 갖는 특별한 힘이다. 그것은 지나가지만 동시에 영원하다.

사랑의 보편성: 편견을 넘어선 인간적 연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진정한 힘은 퀴어 영화라는 장르적 경계를 넘어서는 사랑의 보편성에 있다.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남성 간의 사랑이라는 특수성이 아니라, 첫사랑의 설렘과 상실이라는 보편적 경험 때문이다. 성별이나 성적 정향과 관계없이, 누구나 엘리오의 떨림과 올리버에 대한 갈망을 이해할 수 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 중 하나는 엘리오의 아버지다. 아들의 관계를 눈치챈 그가 보여주는 성숙한 반응은 이 작품이 지향하는 이상적 어른의 모습이다. "우리의 마음과 몸은 단 한 번만 주어지는 것"이라며 사랑의 고통까지도 소중히 여기라는 그의 조언은, 사랑에 대한 가장 지혜로운 통찰 중 하나다. 그는 아들의 선택을 판단하지 않고, 대신 그 경험의 소중함을 인정해 준다.

이런 이해와 포용은 현실에서는 쉽게 찾기 어려운 이상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이상적 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사랑은 그것이 어떤 형태든 존중받아야 하며, 그 아름다움 앞에서 편견은 무의미해진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술이 말하는 것들: 감정의 언어를 찾아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예술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소통하는 언어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음악, 문학, 조각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감정을 표현한다. 엘리오가 피아노로 연주하는 바흐의 변주는 그의 마음 상태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자, 올리버에게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다.

특히 베를리오즈의 『트로이 사람들』 중 "Is it Pain or Is it Pleasure?" 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을 압축한다. 고통과 쾌락 사이의 모호한 경계는 엘리오가 경험하는 사랑의 본질이다. 사랑은 기쁨이지만 동시에 고통이며, 그 둘을 분리할 수 없다는 진실을 예술을 통해 드러낸다.

영원한 여름의 의미

결국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그려내는 것은 사랑이라는 미스터리 자체다. 사랑은 설명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으며,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여름은 끝났지만, 그들이 함께 만든 음률은 계속해서 울려 퍼진다.

그 음률은 우리 각자의 가슴 속에서도 다른 선율로 변주되어 연주된다. 첫사랑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아직 그 사랑을 기다리는 모든 이들에게, 이 영화는 하나의 위로이자 약속이다. 사랑은 지나가지만, 그 흔적은 영원하다는 것을.

사회평론가/(전)인천대 교수/사회학 박사.사회복지학 박사/논설위원
사회평론가/(전)인천대 교수/사회학 박사.사회복지학 박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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