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친구와 다툼이 있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많은 부모들은 우선 걱정부터 앞선다. ‘혹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에 회부되는 건 아닐까?’, ‘기록이 남으면 입시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이제 학교폭력은 단순한 생활지도 차원을 넘어, 아이의 진로와 미래를 가늠하는 하나의 결정변수가 되어가고 있다. 학생 간 갈등이라는 교육적 문제를 넘어서, 제도적 판단의 영역으로 옮겨진 순간부터는 상황이 훨씬 복잡해지고, 무거워진다.
실제로 2025학년도부터는 전국 모든 대학이 학교폭력 조치 사항을 입시자료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도록 기준이 강화되었다. 학폭위의 결정은 단순히 생활기록부에 몇 줄 남는 기록에 그치지 않는다. 그 판단은 입시의 당락을 좌우할 수 있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한 학생의 인생 서사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중대한 결정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내리고 있는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령상 학폭위는 10명 이상 50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이 중 3분의 1 이상을 반드시 학부모 위원으로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당사자성, 공정성 확보라는 명분 아래 설계된 구조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의도와 결과 사이의 괴리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위원회에는 변호사, 경찰, 상담교사 등 일정한 전문성을 갖춘 위원도 일부 포함될 수 있지만, 사건마다 무작위로 선출되는 학부모 위원 다수가 법률적 판단의 논리와 심리적 개입의 경계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사건 당사자의 진술을 해석하고 그 의미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정서적 공감이 이성적 판단을 앞서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한 예로, 피해 학생이 눈물로 진술하는 순간, 위원회 분위기는 단박에 쏠림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관계와 고의성, 반복성 같은 핵심 판단 요소는 상대적으로 희미해지고, ‘그 아이가 얼마나 아파 보이는가’에 더해진 정서적 이미지가 판단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한 쪽의 목소리는 진실이 되고, 다른 한 쪽의 맥락은 변명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의도치 않게 한 학생에게 ‘가해자’라는 낙인을 찍는 구조적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사건을 들여다보면, 한 아이의 일방적 잘못으로만 구성되지 않은 사건들이 많다. 갈등의 시작은 쌍방 간 오해였고, 서로 감정이 격해졌던 일회적 충돌이었음에도, 일단 ‘학폭’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면 상황은 급격히 비대칭적으로 흘러간다. 변호사로서 현장에서 수많은 사례를 접하다 보면, 이 제도가 ‘피해자 보호’라는 대의로 설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딜레마를 목격하게 된다.
학교폭력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학교폭력을 판단하는 구조 역시 절대 가볍게 작동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처벌이나 더 빠른 결정이 아니라, 더 정교한 절차와 더 입체적인 시선이다. 감정이 아닌 기준으로, 인식이 아닌 구조로 사건을 들여다보아야 하고, 무엇보다 부모라면 이 판단 구조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 아이가 혹여 피해자가 되든, 가해자로 지목되든, 학폭위는 단순히 갈등을 조정하는 기구가 아니라 그 아이의 사회적 미래를 재단하는 자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칼럼을 통해 학교폭력 제도가 작동하는 방식과 그 이면에 감춰진 법적·제도적 맥락을 꾸준히 전달할 예정이다. 제도의 취지를 왜곡하지 않되, 제도의 맹점에 눈감지도 않겠다. 필요할 땐 어떻게 대응하고 방어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전달하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공정함과 책임감 사이의 균형점을 함께 고민해보려 한다.
기록은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 기록이 누구의 판단에 의해 남겨졌는지, 그 판단의 기준은 과연 정당했는지, 우리는 이제 그 구조를 묻고 점검할 때다. 진짜 보호는, 문제 이후가 아니라 문제 이전에 시작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