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 3모작을 위한 진짜 연결의 조건 -
“퇴직 후 무엇을 할 계획입니까”라는 질문은 신중년에게 가장 낯설면서도 무거운 물음이다. 많은 이들이 “생각은 있지만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고 답한다. 정부는 평생현역과 인생 3모작을 내세우며 다양한 제도를 쏟아내고, 공공기관과 지자체는 퇴직설계, 재취업,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앞다투어 내놓는다. 자료집은 넘쳐나지만, 정작 신중년 당사자가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제도는 흩어져 있고 길은 이어지지 않는다. 이 간극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직면한 진짜 문제다.
고용노동부의 중장년 경력지원제, 노사발전재단의 중장년내일센터, 서울시 50플러스재단, 공무원연금공단의 퇴직설계 과정까지 제도의 이름은 다채롭지만 이들이 하나의 여정을 이루지 못한 채 제각각 흩어져 있다. 생애설계 교육을 받아도 일자리 연계가 끊기고, 재취업이 성사되어도 사회공헌 활동이나 지역 커뮤니티와 연결되지 않는다. 성과는 몇 명이 교육을 받았는지에 머물 뿐, 실제로 몇 명이 자리를 잡아 후반전을 살아가는지에 대한 평가는 비어 있다.
서울이나 광역시에서는 캠퍼스형 센터와 전문 과정을 통해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지만 군 단위나 농산어촌 지역은 상황이 다르다. 정보 접근도 어렵고 프로그램도 단편적이라 귀농귀촌이나 지역사회 일자리로 이어질 기회가 부족하다. 결국 품격 있는 웰에이징이라는 구호는 수도권 중심의 구호로 머무르기 쉽다.
첫째, 사후관리의 부재가 문제다. 퇴직 전 교육과 훈련은 많지만 퇴직 후 3개월, 6개월, 1년 뒤의 삶을 추적하는 장치는 없다. 몇 명이 일자리를 유지하는지, 사회공헌이 이어지는지, 재무와 건강은 안정적인지에 대한 데이터가 없다. 이를 해결하려면 교육 이후 3·6·12개월 추적조사를 의무화하고 성과평가에 반영해야 하며, 단순 참여율 대신 지속 가능성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둘째, 통합 거버넌스의 부재다. 고용부, 인사혁신처, 공단, 지자체가 각자 움직이며 중복과 공백이 동시에 발생한다. 신중년은 제도를 옮겨 다니며 같은 진단을 반복하거나 필요한 프로그램을 찾지 못한다. 따라서 교육·훈련·일자리·사회공헌 이력을 하나로 관리하는 원스톱 경력계정을 구축해 어떤 과정을 이수했는지 기록되고 다음 단계가 자동 추천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새로운 수요에 둔감하다. 디지털 전환과 AI 시대에 맞는 교육과 일자리가 여전히 부족하다. 전통적인 직종이나 단순 재취업 훈련이 주류를 이루지만 실제로는 디지털 금융, 온라인 비즈니스, AI 활용, ESG 기반 사회공헌 같은 영역에 대한 수요가 높다. 모든 평생학습센터와 내일센터에 디지털 리터러시·AI 기초 과정을 개설하고, 돌봄·문화복지·환경·지역 혁신 등 신직종 트랙을 공식 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
결국 해결책은 길을 잇는 것이다. 지금처럼 각 제도가 흩어져서는 희망을 주기 어렵다. 교육에서 훈련, 일 경험, 고용, 사회공헌으로 흐름이 이어질 때 신중년은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사후관리 지표를 강화하고, 통합 플랫폼을 세우며, 디지털 대비 교육을 확장해야 한다. 지역 균형도 고려해야 한다. 권역별 컨소시엄을 통해 대학·지자체·기업·비영리가 매월 전환 데이를 공동 개최하고 농어촌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지방에서도 기회가 열릴 것이다. 또한 사회공헌을 단순 봉사가 아니라 공식 경력 포트폴리오로 인정해 민간 기업 채용과 연계해야 한다.
신중년을 위한 제도는 많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흩어진 섬이다. 섬들을 잇는 다리를 놓아야 인생 3모작이라는 대륙이 보인다. 퇴직을 앞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실제 삶이 이어지는 길이다. 사후관리라는 추적과 통합 플랫폼이라는 연결, 그리고 새로운 수요를 향한 준비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품격 있는 웰에이징이 완성된다. 진정한 인생 3모작은 제도의 수가 아니라 길이 연결될 때,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이 희망을 확인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