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과학기술은 단연코 인공지능이다. 2016년 한국인들은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세계에서 가장 바둑 실력이 높은 사람을 인공지능이 이기는 대결을 보면서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당시 적지 않은 사람들은 곧 사람이 인공지능에게 지배당하는 날이 오는 것은 아닐지 염려하였다. 그런데 2023년 초 세계는 물론, 한국에서도 사람들은 다시 인공지능에 높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챗-GPT라는 사람과 대화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름 그대로 이 인공지능은 인간이 묻는 말에 제법 똑똑하게 자신의 의견을 대답해준다. 이 인공지능은 일반 사람이 묻는 질문을 넘어, 전문가들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치 만물박사처럼 척척 대답한다. 그러자 다시 한 번 사람들은 이러다가 인공지능에게 지배당하는 날이 곧 오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이러한 염려는 전문 학자들이 연구하는 각종 학술회의 토론 주제가 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래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지, 과연 우리 인간의 미래 운명이 어떠할지는 많은 학자들은 물론, 대중도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은 그동안 기계문명을 통해 생활의 편리함은 물론, 환경의 안 좋은 영향에까지 큰 영향을 미쳐왔다. 그렇지만, 이제는 인간이 만든 지능이 인간 문명을 주도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가까운 미래 사회가 지금과 급격히 달라질 것을 염려하는 일은 모두 과학기술 문명의 빠른 속도와 관련이 있다. 그 속도가 너무도 빨라서 우리가 염려하는 미래가 백년 혹은 천년 후의 시대가 아니다. 50년, 30년, 10년 후를 염려하게 되었다. 이렇게 빠른 변화를 보면서 인류는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전망하면서, 한 편으로는 얼마나 인간에게 편리하고 유익한 세계가 펼쳐질지를 기대하기도 하지만, 인류가 생존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를 염려하기도 한다. 미래를 염려하는 학자들 모임인 미래학회 회원들도 미래가 지속 가능한 사회일지 문제를 연구한다. 그들은 미래 사회가 인류의 멸망, 혹은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전-지구적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는 사회가 아닐지 염려한다. 이렇게 염려하는 것은 어쩌면 심리학자들이 말하듯이 인간은 이익보다 손해에 더 큰 관심을 갖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미래 인류는 지금으로서는 추측하기조차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야 할 것은 분명하다. 사실 우리는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고, 또 알아볼 방법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알지 못하고 보지조차 못한 세계의 문제를 인류는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더구나 인천은 최근 “초일류도시”를 만들겠다는 장기적·단기적 세부 여러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 미래가 기대하고 계획하는 대로 진행될지를 지금 우리로선 확신하기 어렵다. 나아가서 그런 미래의 인천이 지금보다 나아지는, 혹은 긍정적 결과만을 얻어낼지 장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도, 인공지능을 개발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과도 같다. 그 개발에 뒤처지면 경제적, 사회적, 군사적 경쟁에서 낙오될 것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그것처럼 인천이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아직 알지 못하는 미래 인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이다. 우리는 미래의 문제를 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나는 철학자로서 서양의 고대에서부터 있었던 인류의 지성사를 보면서, 그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으로 어떤 것을 얻었으며, 그 대답 역시 어떤 문제를 가져서, 다시 질문의 대상이 되었는지 역사를 살펴보았다. 그들이 찾았던 지혜는 질문할 줄 아는 능력에서 왔으며, 그 질문은 비판적 질문이라는 것도 살펴보았다. 비판적 질문을 통해서 그들은 새로운 시각 또는 관점을 얻을 수 있었고,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 새로운 해결책을 얻어내기도 했다. 한 마디로 그들은 비판적 질문 혹은 사고를 통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것이 서양에서 고등학교에서도 철학 공부를 교과과정에 포함시키는 이유이다. 그것은 과거의 곤란한 문제에 직면했던 역사적 전통에서 나온 지혜이다.

철학을 공부하는 국민, 자신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일상을 가지는 국민,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국민의 모습이 아닐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문제에 직면해서 그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면서 문제의 본질적 측면을 바라보고, 그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비판적 질문하기이다.

또한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은 다만 철학적 사유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문제와 관련하여 이미 상당히 많은 지식, 배경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런 배경지식을 가지지 않고서야, 새로운 시각으로 당면 문제를 바라볼 시각을 창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서양에서 많은 교과목에 교과서가 없어도 되는 이유이었을 것이다. 우리 생각에 교과서가 없이 어떻게 교육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창의적 문제 해결의 측면에서 보면, 굳이 정해진 교과서보다 다양한 독서가 더욱 배경지식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독서를 통한 공부는 다양한 배경지식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나아가서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면, 다양한 시각에서 집단적 문제의 판단 및 해결을 위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줄 것이다.

미래의 문제, 아직 알지도 못하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우리는 그런 문제를 해결할 자산으로 많은 독서와 그것을 통한 배경지식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런 배경지식에서 우리의 다양한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사고해보는 일상은 우리에게 지금 세계에 대한 넓은 이해를 주는 것은 물론, 지금의 문제를 새롭게 바라볼 시각 혹은 관점을 제공해줄 것이다. 한 마디로, 초인류도시 인천이 진정으로 그러한 사회로 나아가려 기획한다면, 무엇보다 시급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 그런 사회에 살아갈 시민, 그런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갈 시민이 준비되어야 한다.

논설위원 박제윤(철학박사)
논설위원 박제윤(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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