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문무의 영화로 세상읽기 #27] 영화 '대가족'이 던지는 질문: 이 시대에 가족이란 무엇인가
2024년 12월 개봉한 영화 '대가족'(對家族, about the family)은 양우석 감독이 처음 시도한 가족 코미디로, 우리 사회에 "이 시대에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맛집 '평만옥'을 운영하는 함무옥(김윤석)과 승려가 된 그의 아들 함문석(이승기), 그리고 갑작스럽게 나타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전통적 가족 개념을 넘어선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탐구한다.
가족관계의 패러다임 전환
한국 사회의 가족 개념은 지난 수십 년간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전통사회에서는 혈연과 혼인을 기반으로 한 확대가족이 주를 이뤘다면,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며 핵가족이 표준 모델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이마저도 변화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혈연 중심의 가족개념에서 선택적 관계로서의 가족개념으로의 전환이다. 이는 단순한 형태적 변화를 넘어선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과거 '주어진 관계'였던 가족이 이제는 '선택하고 만들 어가는 관계'로 인식되고 있다.
현대 사회의 개인화 진행은 이러한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개인의 자율성과 선택권이 중시되면서, 가족 구성원들 역시 서로를 '선택'하는 존재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는 의무와 책임만으로 유지되던 전통적 가족관계에서 벗어나, 상호 존중과 애정에 기반한 새로운 가족관계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1인 가구 급증: 가족 해체인가, 가족 재정의인가
한국 사회의 1인 가구 비율은 2024년 말 기준 전체가구의 약 42%에 달한다. 전체 2,412만 가구 중 1인 가구 수가 1,000만 가구를 넘어선 수치이다. 이는 결혼에 대한 가치관 변화, 개인주의 확산, 경제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1인 가구 증가의 주요 원인들을 살펴보면, 첫째, 젊은 세대의 결혼관 변화에 따른 비혼·만혼의 증가가 있다. 과거 결혼이 '당연한 인생 코스'였다면, 이제는 '선택 사항'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둘째, 경제적 부담과 양극화로 인해 결혼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셋째,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와 성평등 의식의 확산으로 전통적 성역할에 기반한 결혼제도에 대한 회의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1인 가구의 증가를 단순히 '가족의 해체'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많은 1인 가구 구성원들이 혈연가족과는 다른 형태의 친밀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 동료, 이웃과의 관계에서 가족적 유대감을 찾거나,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생활을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얻는 등 새로운 형태의 '선택된 가족'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영화 속 가족의 재정의와 현실적 함의
영화 '대가족'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다. 대를 이을 줄 알았던 아들이 승려가 되어 '가문의 맥이 끊길' 위기에 처한 무옥에게 갑작스럽게 나타난 아이들은 혈연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양우석 감독이 "혈연이 아닌, 자비와 연민이 만드는 따뜻한 가족 이야기"라고 표현한 것처럼, 영화는 가족을 혈연의 굴레에서 해방시킨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승려가 된 문석의 캐릭터다. 전통적 관점에서 출가는 세속적 가족관계의 단절을 의미했지만, 영화는 오히려 불교의 자비와 연민 정신을 통해 더 큰 가족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모든 존재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이며, 이는 혈연을 넘어선 보편적 가족애의 근거가 된다.
영화가 제시하는 가족관은 현실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실제로 현대사회에서는 가족 구성원 간의 배려와 상호의존, 친밀성을 바탕으로 한 관계가 혈연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가족이 '혈통의 연속'이 아닌 '사랑의 공동체'임을 의미한다.
현대 사회 가족의 의미 재탐구: 친밀성과 돌봄의 관계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건강가정기본법에서는 여전히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가족을 정의하지만, 실제 사회 현실은 이 정의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현대 사회의 가족은 더 이상 혈연이나 법적 관계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함께 거주하며 경제적·정서적으로 서로를 돌보는 관계, 서로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헌신하는 관계야말로 진정한 가족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개인화된 삶의 방식이 보편화되면서도 여전히 친밀한 관계에 대한 욕구는 지속되고 있으며, 이러한 욕구가 새로운 형태의 가족관계 형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가족은 "선택하는 관계"로서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 이는 의무감보다는 자발적 애정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관계를 의미한다. 부모와 자녀 간에도, 부부 간에도 서로를 '선택'하고 '지속'하려는 의지가 관계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다양성과 유연성의 가족 시대
앞으로 한국 사회의 가족개념은 더욱 다원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1인 가구의 지속적 증가, 비혼 동거 커플의 증가, 동성 파트너십의 사회적 인정 확대 등은 가족의 경계를 더욱 유연하게 만들 것이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가족은 물리적 공간을 공유하는 것보다 정서적 연대와 상호 돌봄의 관계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게 가족은 '주어진 것'이 아닌 '만들어 가는 것', '선택하는 것'이 될 것이다. 개인화된 형태의 가족구조 확대는 이미 진행 중이며, 이는 전통적 집단주의 문화에서 개인중심 문화로의 전환을 반영한다.
또한 고령화 사회 진입과 함께 전통적 효(孝) 개념도 재정의될 것이다. 단순히 혈연적 의무가 아닌, 상호 존중과 자발적 돌봄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세대 간 관계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부양'의 개념에서 '상호 돌봄'의 개념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미래의 가족은 보다 유연하고 다층적인 형태를 띨 것이다. 생물학적 가족, 선택된 가족, 확장된 가족 네트워크 등이 중층적으로 존재하며, 개인은 생애 주기에 따라 다양한 가족관계를 경험하고 구성해 나갈 것이다.
자비로 연결되는 새로운 가족
영화 '대가족'의 가장 큰 시사점은 가족을 "피가 아닌 마음으로 맺어지는 관계"로 재정의했다는 것이다. 혈연 중심의 전통적 가족관에 매몰되어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무옥이 아이들을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 과정은, 현대 사회가 겪고 있는 가족개념의 혼란에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다.
특히 영화가 불교의 자비사상을 통해 가족애를 해석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자비는 "상대의 괴로움을 없애고 그에게 기쁨을 주려는 마음"으로, 이는 혈연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존재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사랑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가족은 DNA가 아닌 돌봄과 사랑으로 정의된다.
영화는 또한 세대 갈등 해결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아들의 출가로 실망한 아버지가 결국 아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는 과정은, 개인의 선택권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서 가족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이는 가족 내 개인의 자율성과 발달을 강화하는 새로운 가족관의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가족 시대를 향하여
영화 '대가족'은 단순한 코미디를 넘어 우리 시대 가족의 본질적 의미를 묻는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가족의 형태는 다양해지고 있지만, 그 핵심은 여전히 사랑과 돌봄, 그리고 서로에 대한 책임감에 있다.
1인 가구의 증가와 개인화 시대의 도래는 가족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다 자발적이고 선택적인 형태의 가족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혈연이나 법적 관계가 가족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도 아닌 시대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걱정하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마음이다.
영화가 보여주듯 진정한 가족은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제 가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벗어던지고, 더 포용적이고 유연한 가족 개념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선택적 관계로서의 가족, 자비와 연민, 상호돌봄으로 연결되는 가족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족의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