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문무의 영화로 세상읽기 #26] '자산어보', 흑산도에서 피어난 인간애
2021년 이준익 감독이 선사한 영화 ‘자산어보’는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전의 유배 생활을 통해 진정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 그리고 학문의 본질적 가치를 담아낸 수작이다. 설경구와 변요한의 섬세한 연기로 구현된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 영화를 넘어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깊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줄거리
영화는 1801년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인해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설경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천주교 신자라는 죄목으로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섬에 도착한 그는 처음에는 절망과 체념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성품의 정약전은 점차 흑산도의 바다와 그 생물들에 매료되기 시작한다.
정약전이 바다 생물들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 그는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를 만나게 된다. 창대는 바다 생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죄인을 도울 수 없다며 처음에는 단칼에 거절한다. 하지만 정약전의 진정성과 학문에 대한 열정, 그리고 백성을 위한 실용서를 만들고자 하는 뜻에 감화되어 결국 협력하게 된다.
두 사람의 만남은 단순한 지식의 전수를 넘어선다. 정약전은 창대에게 문자와 학문의 세계를 열어주고, 창대는 정약전에게 바다의 생생한 지혜를 전해준다. 이들의 협력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조선 최초의 해양생물 도감인 「자산어보」이다. 하지만 창대가 과거에 급제하여 한양으로 떠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이별의 아픔을 맛본다.
몰락한 남인 명문가의 시련
정약전이 속한 나주 정씨 집안은 조선 후기 남인 계열의 대표적인 명문가였다.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삼형제로 유명한 이 집안은 외할머니가 고산 윤선도의 후손인 해남 윤씨 출신으로, 정치적으로는 남인에 속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상당한 부를 축적한 가문이었다.
특히 정약용의 6대 외조부가 바로 남인의 영수 고산 윤선도였으며, 외조부 윤두서 역시 당대의 명사였다. 하지만 이들 집안은 천주교와 인연을 맺으면서 큰 시련을 겪게 된다. 정약현의 처남 이승훈이 최초의 복음 전파자였고, 정약종은 순교자가 되었으며, 정약전과 정약용은 배교를 통해 목숨을 건졌지만 유배의 길을 걸어야 했다.
신유박해와 조선 후기 정치적 격동
영화의 배경이 되는 1801년은 조선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다. 정조가 승하한 이듬해, 어린 순조를 대신해 수렴청정을 시작한 정순왕후는 벽파의 지지를 받아 대대적인 천주교 탄압에 나선다. 이것이 바로 신유박해다.
신유박해는 단순한 종교 탄압을 넘어선 정치적 숙청이었다. 벽파는 오랫동안 정권에서 소외되어 있던 상황에서, 천주교를 무부무군(無父無君)의 멸륜지교(滅倫之敎)로 몰아붙여 시파 세력을 일거에 제거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정약종을 비롯한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되었고,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는 배교를 통해 목숨을 건졌지만 각각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영화에서 정약전이 처한 절망적 상황의 근본 원인이 되며, 동시에 그가 학문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의 역사적 맥락을 제공한다.
계급을 넘어선 진정한 만남
영화 「자산어보」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는 정약전과 창대 사이의 사제지간을 그려낸 방식이다. 이들의 관계는 전통적인 상하 관계의 스승-제자 구도를 뛰어넘는다. 정약전은 양반 출신의 학자이지만 창대에게서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으며, 창대 역시 신분의 벽을 넘어 정약전을 진정한 스승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의 관계가 일방향적 가르침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학습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정약전은 창대에게 문자와 학문적 방법론을 가르쳐주지만, 정작 바다 생물에 대한 실질적 지식은 창대로부터 얻는다. 이는 실학의 핵심 정신인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몸소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창대가 정약용의 제자와 벌이는 시조 대결 장면은 이러한 관계의 정점을 보여준다. 한양에서 온 정약용의 제자는 책에서 배운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창대는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진정성 있는 언어로 맞선다. 이 장면은 진정한 학문이 무엇인지, 그리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약전의 세계관: 실학과 민본주의가 만나는 지점
영화 속 정약전의 세계관은 조선 후기 실학사상과 천주교에서 받아들인 평등 의식이 결합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의 가장 큰 특징은 계급의식을 뛰어넘은 민본주의적 사고다.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목적 자체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단순히 학문적 호기심이나 개인적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이 바다 생물을 제대로 알아 생계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 이 책을 쓴다. 이는 실학의 핵심 정신인 실용성과 백성을 위한 학문이라는 이념을 구현한 것이다.
영화에서 정약전이 "상놈도 없고, 양반도 없고, 임금도 신하도 없는 세상, 백성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희망한다"고 말하는 장면은 그의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전통적인 성리학적 신분제를 부정하는 급진적 사고로, 천주교의 평등사상과 실학의 민본주의가 결합된 결과물이다.
주요 장면: 인간애와 학문 정신의 결정체
영화는 여러 인상적인 장면들을 통해 정약전의 인물상과 당시의 시대상을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가장 먼저 언급할 장면은 정약전이 창대와 처음 만나는 바닷가 장면이다. 유배를 온 죄인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창대에게 정약전이 진정성을 보이며 점차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영화 전체의 톤을 결정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또 다른 핵심 장면은 두 사람이 함께 바다 생물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과정들이다. 정약전이 창대의 구술을 받아 적으며 체계적으로 정리해 나가는 모습은 실학자다운 면모를 잘 보여준다. 특히 정약전이 흑산도(黑山島)를 자산도(玆山島)라고 부르기 시작하는 것은 절망의 땅을 희망의 땅으로 바꾸어 보는 그의 긍정적 세계관을 상징한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의 서문에 그 이유를 흑산이라는 이름이 음침하고 어두워 ‘자(玆)’는 ‘흑(黑)’의 검다는 뜻도 있어서 ‘자산=흑산’이므로 ‘자산’으로 이름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창대가 과거에 급제한 후 한양에서 부패한 관리들의 모습을 목격하고 실망하여 다시 흑산도로 돌아오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그리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 철학적 성찰의 시간이다.
한편 정약전의 삶에 대한 태도는 "죽어 욕된 것은 만회할 길이 없지만, 살아 욕된 건 살아서 만회할 길이 있네. 버틸 때까지 버텨 보세"라는 정약전의 말에서 말 나타난다. 이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와 희망을 상징한다.
현대적 의미: 진정한 교육과 소통의 가치
영화 ‘자산어보’는 단순한 역사 영화를 넘어서 인간의 존재론적 가치와 진정한 학문의 의미를 탐구한 수작이다. 비록 200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현대적 메시지 역시 강하다. 신분과 출신을 뛰어넘은 진정한 스승-제자 관계, 실용적이면서도 인간적인 학문의 자세, 그리고 절망적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의지 등은 모두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들이다.
특히 정약전이 보여준 '배우는 자세'는 현대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창대에게서도 기꺼이 배우며,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일방적 주입식 교육이 아닌 상호 소통하는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또한 정약전의 민본주의적 세계관은 현재의 민주주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모든 인간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