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문무의 영화로 세상읽기 #24] 신자유주의 시대의 인간 존엄성 :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통해 본 복지국가의 해체와 사회적 연대의 복원

2025-11-10     유석하 논설위원
이미지 / Whisk 생성

영국의 거장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는 단순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서,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된 신자유주의 물결의 산물이다. 201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한 명의 평범한 시민이 국가 시스템에 의해 어떻게 절망으로 내몰리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줌과 동시에, 그 폐허 속에서 피어나는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줄거리

59세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병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질병수당을 신청하지만, 외관상 장애가 없다는 이유로 기계적 심사에서 거부당한다. 더욱이 모든 복지 신청 절차가 온라인으로만 진행되기에 다니엘은 디지털 격차가 만든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소외를 경험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니엘이 구직센터에서 만난 싱글맘 케이티 역시 몇 분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수당 지급에서 제외되어 절망적 처지에 놓인다. 다니엘은 자신도 어려운 상황임에도 케이티 가정의 전기세를 대신 내주고 집수리를 도와주며, 케이티는 극심한 빈곤 속에서도 그를 돌보며 서로의 존재 자체가 위안이 되어준다.

시스템의 모순에 분노한 다니엘은 구직 활동 증명 부족으로 보조금이 중단되자 구직센터 벽에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 죽기 전에 항소 요구를 받아들여라"라고 스프레이로 써놓고 1인 시위를 벌인다. 지나가는 시민들이 그에게 보내는 박수는 개인의 저항이 사회적 공감으로 확산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하지만 경찰에 연행된 후 우울증에 빠진 다니엘은 집에 칩거하며 절망의 나날을 보낸다.

케이티의 딸이 가져온 따뜻한 식사로 다시 희망을 얻은 다니엘은 질병수당 항고 재판에 참석하지만, 재판 당일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생을 마감한다. 그가 항고에서 낭독하려 했던 마지막 항변문은 결국 그의 장례식에서 케이티에 의해 대신 읽혀진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복지국가의 황금기와 1970년대 위기: 신자유주의 등장의 배경

다니엘 블레이크가 직면한 복지제도의 냉혹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1970년대 복지국가 위기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2차 대전 이후 서구 선진국들은 케인즈주의에 기반한 복지국가 모델을 구축했다. 완전고용과 보편적 복지를 목표로 한 이 시스템은 1950-60년대 '황금 30년' 동안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촉발된 스태그플레이션은 케인즈주의 경제학의 근본적 한계를 드러냈다.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 앞에서 기존의 정책 도구들은 무력했다. 재정 지출 확대는 더 이상 고용 창출로 이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인플레이션만 가중시켰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주의 복지국가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대처-레이건 혁명: 복지국가 해체의 시작

1979년 영국의 마가렛 대처와 1981년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집권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본격적 개막을 알렸다. 대처의 정책은 영화 속 다니엘이 겪는 고통의 직접적 원인이다. 복지 예산 삭감, 국영기업 민영화, 노동조합 규제, 작은 정부 구현을 핵심으로 한 대처리즘은 복지를 권리에서 시혜로 전락시켰다. 집권 기간 중 48개 공기업이 민영화되고 공기업 종사자가 178만 명에서 47만 명으로 급감하면서, 실업률은 3배나 증가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생산적 복지' 개념의 도입이다. 이는 노동을 전제로 한 복지 제공을 의미하며, 영화 속에서 다니엘이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임에도 구직 활동을 증명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의 제도적 근거가 된다. 복지 수급자들은 끊임없는 감시와 통제하에 놓이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2010년대 긴축정책: 신자유주의의 완성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2010년대 영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보수당 정부는 재정건전성 회복이라는 명분으로 5년간 공공서비스 지출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357억 파운드를 삭감했다. 이는 전체 공공서비스 예산 1660억 파운드의 21%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긴축의 결과는 참혹했다. 전국 800개 도서관이 폐쇄되고, 대학 등록금은 3배 인상되었으며, 경찰공무원 2만 명이 감축되어 치안이 악화되었다. 런던정치경제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긴축은 약 19만 명의 초과사망을 초래했다. 다니엘의 죽음은 통계가 아닌 구체적 현실인 셈이다.

디지털 격차와 관료주의의 폭력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모든 복지 신청 절차가 온라인으로만 진행되는 현실이다. "연필 시대 사람"인 다니엘이 마우스를 손으로 움켜쥐어 허공으로 들어 올리는 장면은 디지털 격차가 만든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배제를 상징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된 디지털화는 사실상 복지 수급자들에 대한 접근 장벽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복잡한 온라인 절차, 기계적인 심사 시스템, 인정사정없는 벌금 제도는 모두 '작은 정부'를 구현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그 과정에서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더욱 소외되고, 제도의 사각지대로 밀려난다.

사회적 연대와 결속

켄 로치가 영화를 통해 제시하는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밀 뒤르켐의 연대 이론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뒤르켐은 전통사회의 '기계적 연대'에서 현대사회의 '유기적 연대'로의 발전을 제시했다. 기계적 연대가 동질성에 기반한다면, 유기적 연대는 상호 의존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사회적 결속이다.

신자유주의는 개인주의와 경쟁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사회적 연대를 의도적으로 해체했다. 대처의 유명한 발언 "사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과 가족만이 있을 뿐이다"는 이러한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뒤르켐이 지적했듯이 사회적 연대의 해체는 아노미와 사회 해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켄 로치의 연대 미학: 개인을 넘어서는 집단적 실천

켄 로치는 평생에 걸쳐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을 탐구해 왔다. 그의 영화에서 연대는 단순한 개인적 동정이나 자선이 아니라, 구조적 모순에 맞서는 집단적 실천으로 그려진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도 주인공과 케이티의 관계는 상호부조의 전형을 보여준다.

다니엘이 케이티 가정의 전기세를 대신 내주고, 집수리를 도와주며, 아이들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모습은 제도가 실패한 자리에서 작동하는 인간적 연대의 모습이다. 이는 뒤르켐의 유기적 연대 개념과 맞닿아 있다. 서로 다른 처지에 있지만 상호 의존하며, 그 과정에서 진정한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미완의 항변과 지속되는 연대의 가능성

다니엘이 항고 재판에서 읽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마지막 항변문은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이 항변은 단순한 개인의 절규가 아니다. 켄 로치 감독이 일관되게 추구해 온 계급의식과 노동자 연대의 표현이다. 로치는 "연대는 인종차별을 포함한 모든 차별의 해독제가 될 수 있다"며 "노동자 계급 투쟁에서도 연대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구직센터 벽면에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 죽기 전에 항소 요구를 받아 들여라"라고 스프레이로 쓰는 다니엘의 행동은 개인적 저항이 사회적 연대로 확산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의 행동에 박수를 보내는 시민들, "빌어먹을 민영화. 망할 보수당 놈들"이라고 외치는 행인의 모습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적 분노가 집단적 저항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국적 맥락에서의 재해석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노인 빈곤율 세계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 불안정한 고용 구조, 디지털 격차로 인한 노인층 소외 등은 모두 다니엘 블레이크의 이야기와 직결된다. 기초생활수급 탈락, 긴급복지 미신청, 장애인 등급 판정 오류 등으로 제도에서 밀려나는 사례가 빈번하고, 이에 대한 이의제기 절차'는 매우 복잡하며, 디지털화 시스템은 고령자·장애인에게 벽이 되고 있다. 최근 고독사, 쪽방촌 사망 사건들은 모두 제도적 무관심이 원인이기에, 다니엘처럼 ‘정책의 대상’이 아닌, ‘주체적 인간’으로 존중받는 복지 설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도 연대의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국가보다 먼저 움직인 비공식 시민 연대의 모습은 국가가 개인을 존중하지 않을 때, 사람끼리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공동체 결속의 촛불집회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 세월호 참사 이후의 시민사회 연대, 코로나19 시기의 상호부조, 재난 때마다 나타난 자발적 나눔, 시민 모금, 식사나눔 운동 등 등은 모두 켄 로치가 그려낸 연대의 현실적 구현이다.

존엄성 회복을 위한 연대의 정치학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신자유주의 40년사의 결산이자, 동시에 대안적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88세의 노장 켄 로치가 이 영화를 통해 제시하는 것은 단순한 비관이나 낭만적 희망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 위에서 구축되는, 실천 가능한 연대의 정치학이다.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이며, 그 권리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존엄성에 기반해야 한다. 개인의 능력과 책임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담론을 넘어서, 사회적 상호 의존성을 인정하고 집단적 연대를 실천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다니엘 블레이크가 우리에게 남긴 진정한 유산이다.

케이티가 다니엘의 장례식에서 읽어준 그의 마지막 말처럼, 우리는 모두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닌, 한 사람의 인간"이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이 권리를 지키기 위한 연대야말로 신자유주의 시대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사회평론가/(전)인천대 교수/사회학 박사.사회복지학 박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