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문무의 영화로 세상읽기 #21] '돈 룩업' : 외면하고 싶은 현실, 그러나 올려다봐야 할 진실

2025-11-03     유석하 논설위원
이미지 / Whisk 생성

2021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애덤 맥케이 감독의 '돈 룩 업(Don't Look Up)'은 단순한 재난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이라는 극한의 위기 상황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무지와 탐욕, 그리고 진실을 외면하려는 집단적 무책임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블랙 코미디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한 두 천문학자의 좌절스러운 여정은 과학적 사실과 진실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상업적 탐욕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진실을 외면하는 권력의 오만함

영화의 주인공인 미시간 주립대학교 천문학과 박사과정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와 그녀의 지도교수 랜달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지구를 파괴할 혜성을 발견하고 백악관을 찾아가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인류 멸망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도 제이니 올린 대통령(메릴 스트립)과 그녀의 아들이자 비서실장인 제이슨(조나 힐)은 중간선거와 대법관 지명 문제에만 관심을 보인다.

특히 제이슨이 민디 박사가 미시간 주립대학교 소속이라는 이유로 "하버드나 프린스턴 같은 명문대 교수도 아닌데 뭘 알겠냐"며 비웃는 장면은 현대 사회의 권위주의적 사고와 학벌주의의 허상을 예리하게 꼬집는다. 과학적 사실의 진위는 그것을 말하는 사람의 출신 대학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닌 데이터와 검증에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편견과 선입견으로 진실을 판단하려 한다.

언론의 무책임과 오락화된 진실

과학자들이 백악관에서 냉대받자 언론을 통해 진실을 알리려 하지만, 여기서도 좌절을 맛본다. 인기 아침 토크쇼에 출연한 두 과학자는 진행자들의 가벼운 태도와 철저히 시청률 위주로 구성된 프로그램의 민낯을 목격한다. 브리(케이트 블란쳇)와 잭 등 진행자들은 인류 멸망이라는 심각한 주제를 단순한 가십거리 수준으로 다루며, 케이트의 절박한 호소를 "히스테리"로 치부해 버린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이 과학적 데이터나 혜성 충돌의 구체적 시나리오보다는 케이트의 감정적 반응과 외모, 그리고 민디 교수의 "예능감"에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복잡한 천체물리학적 계산과 충돌 예측 모델은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생략되고, 대신 "혜성이 정말 떨어질까요?"라는 식의 단순하고 자극적인 질문만이 반복된다. 이는 현대 언론이 복잡한 과학적 사실을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하기보다는 소화하기 쉬운 오락거리로 포장하려는 경향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광고 수익을 위한 프로그램 편성의 문제다. 인류 멸망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다루면서도 중간중간 화장품과 생활용품 광고가 끼워 넣어지고, 진행자들은 광고주들의 눈치를 보며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는 내용은 의도적으로 순화시킨다. 케이트가 "우리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절규할 때, 브리가 즉시 "너무 무거운 이야기는 아침 시간대에 적합하지 않다"며 화제를 돌리려는 모습은 광고주와 시청률을 의식한 ‘언론의 자기검열’ 그 자체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언론의 상업화와 진실 왜곡

시청률 경쟁에 매몰된 언론의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케이트의 분노 장면이 화제가 되자, 각 방송사들은 앞다투어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앵글을 찾으려 한다. 혜성의 과학적 분석보다는 "화난 여성 과학자"라는 캐릭터에 집중하며, 그녀의 사생활과 과거사를 파헤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심지어 민디 교수가 토크쇼에서 인기를 얻자, 다른 프로그램들은 그를 "섹시한 과학자"로 포장해 연예인처럼 소비하려 든다.

이러한 오락 중심의 보도 행태는 정보의 본질을 왜곡시킨다. 혜성 충돌이라는 객관적 사실이 점차 "믿거나 말거나" 식의 추측성 이슈로 전락하고, 과학적 근거보다는 시청자들의 감정적 반응을 자극하는 내용이 우선시된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혜성 충돌 시 생존법"이나 "마지막 날 해야 할 일" 같은 가벼운 특집을 방송하며, 심각한 경고를 단순한 볼거리로 소비해 버린다.

결국 언론은 진실 전달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포기하고 시청률과 광고 수익이라는 상업적 목표에만 매몰된다. 이는 현대 언론이 공익적 역할보다는 영리 추구에 더 관심을 두는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은 단순화되거나 아예 무시되고,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소재만이 살아남는 언론 환경에서 진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특히 케이트의 분노가 인터넷 밈으로 전락하며 조롱거리가 되는 과정은 SNS 시대 정보 소비의 문제점과 함께, 언론이 만들어 낸 왜곡된 프레임이 어떻게 대중의 인식을 조작하는지를 예리하게 지적한다.

탐욕이 삼켜버린 인류의 미래

영화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IT 기업 '배시(BASH)'의 CEO 피터 이셔웰(마크 라이런스)은 현대 자본주의의 탐욕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혜성 충돌을 막는 대신 혜성을 30조각으로 나누어 지구에 떨어뜨려 희토류를 채굴하자는 황당한 제안을 한다. 인류의 생존보다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 계획은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 앞에서도 단기적 이윤만을 추구하는 현대 기업들의 행태를 우화적으로 비판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제이니 대통령이 이런 무모한 계획을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인류의 운명도 도박판의 칩으로 사용하는 정치인의 모습은 현실 정치의 단기적 사고와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피터의 계획이 실패하고 지구 멸망이 확정된 후에야 그들이 미리 준비해 둔 우주선으로 도망치는 장면은 자신들이 만든 재앙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기득권의 무책임함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분열된 대중과 진실 부정의 위험성

혜성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워져도 사람들은 '룩업'파와 '돈룩업'파로 나뉘어 싸운다. 이는 과학적 사실마저도 정치적 입장에 따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현대 사회의 분열상을 보여준다. 기후 변화, 백신 효과, 감염병 대응 등 과학적 사실이 정치적 이념과 결합되어 논쟁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 것이다.

특히 돈룩업파가 하늘에 떠 있는 혜성조차 부정하며 "가짜 뉴스"라고 주장하는 장면은 post-truth 시대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사실마저 자신의 신념에 맞지 않으면 거부하는 태도는 합리적 사고와 과학적 접근법의 몰락을 의미한다.

진정한 가치를 찾는 인간의 존엄성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민디 박사와 그의 가족, 동료들이 혜성 충돌을 앞두고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는 장면은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권력과 부, 명성을 추구하며 진실을 외면했던 이들과 달리, 그들은 가족과 친구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선택한다. 이는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감독의 철학적 성찰을 보여준다.

제이니 대통령이 민디에게 우주선에 함께 탈 것을 제안하지만 거절당하는 장면 역시 의미심장하다. 기득권층의 도피처에 동참하기보다는 끝까지 인간다운 선택을 하는 민디의 모습은 위기 상황에서 드러나는 진정한 인간성을 부각시킨다.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

'돈 룩 업'은 단순히 미국 사회만을 비판하는 작품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반지성주의, 포퓰리즘, 그리고 진실 부정의 위험성에 대한 보편적 경고다. 기후 변화라는 현실적 위기 앞에서 여전히 단기적 이익과 정치적 계산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준다.

영화의 제목 '돈 룩 업'은 현실을 외면하려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상징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불편하고 두려운 진실이라도 용기 있게 직시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경고에 귀 기울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며,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생존을 우선시하는 성숙한 시민 의식이 절실하다.

혜성은 허구지만, 그것이 상징하는 위기는 현실이다. 이제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진실을 마주할 때다.

사회평론가/(전)인천대 교수/사회학 박사.사회복지학 박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