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환 변호사의 학교폭력 #4] 초등학생 간의 '꼬집기'는 학교폭력일까?
- 학교폭력 판단의 본질에 대하여 -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1학년 학생을 방과 후 수업 중 손등을 꼬집어 상처를 입힌 사건에서, 해당 행위를 학교폭력으로 인정했다(서울행정법원 2024. 9. 13. 선고 2024구단51762 판결). 어찌 보면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이 사건은, 우리가 학교폭력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또 그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형식적 요건이 아닌, 실질적 피해와 맥락 중심의 판단이 강조된 이번 판결은, 단지 초등학생 간의 일회적 신체 접촉이 아니라, 학생 보호 제도로서의 학교폭력 규정이 어떤 방향으로 작동해야 하는가를 되묻는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초등학교 2학년인 가해 학생은, 1학년 학생과 함께하는 방과 후 보드게임 수업 중 상대 학생의 손등을 꼬집어 상처를 입혔고, 피해 학생 측은 이에 대해 학교폭력 신고를 하였다. 최초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손등을 꼬집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학교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조치 없음’을 결정했다. 그러나 피해학생 측은 이에 불복하여 행정심판을 제기했고, 행정심판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여 서면사과와 접촉·협박 금지 등의 조치를 내렸다. 이에 가해 학생 측이 이 재결 자체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다시 말해, 법원은 2학년 학생이 1학년 학생을 손등에 상처가 날 정도로 꼬집은 이 사건을 학교폭력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 판결의 핵심은 ‘꼬집음’이라는 행위 자체보다, 그 행위가 만들어낸 결과와 맥락에 주목했다고 판단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법원이 학교폭력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형법상 폭행이나 상해의 요건을 그대로 적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해서, 학교폭력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법원은 “피해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가해학생에 대한 교화·육성이 필요할 정도로 ‘가볍지 않은 행위’”라면 학교폭력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전제하였다. 이처럼 학교폭력의 기준은 ‘법적 형식성’이 아니라 ‘교육적 실질성’에 있다는 원칙이 이번 판결에서 다시금 강조된 셈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고민을 던지는가. 초등학생 간의 장난이나 일시적 신체 접촉이 모두 학교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은 일부 학부모와 교사에게 현실적인 부담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단 한 번의 꼬집음이라도 상대에게 고통과 불안을 남겼다면, 교육공동체는 이를 무시하거나 축소해서는 안 되는 책임을 가진다. 학교폭력은 반복성이나 심각성만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교육환경을 위협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작은 상처가 큰 두려움을 남길 수 있고, 한 번의 대응이 반복된 침묵의 끝일 수도 있다는 점을 제도는 잊어선 안 된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건은, ‘학교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학폭위의 판단도 그 자체로 다시 검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초등학교 저학년 사이에서 발생한 단순해 보이는 사건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충분한 고통이 확인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다. 그리고 이는 단지 처벌을 위한 접근이 아니라, ‘사건을 계기로 양측 모두의 회복과 성장을 도모하는 절차’로써 학교폭력 대응 시스템이 존재해야 한다는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
학교폭력은 법의 문제이자, 교육의 문제다. 그리고 교육은 ‘작은 상처를 큰 교훈으로 전환시키는 힘’을 가질 때 비로소 제 역할을 다한다. 이번 판결은 그 교육적 역할이 제도의 언어로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 역시 이 판례를 통해, 학교폭력을 단순히 ‘행위의 경중’으로 구분하는 대신, 피해의 실질성과 관계의 역학, 그리고 그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을 중심에 두는 시선을 가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