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문무의 영화로 세상읽기 #18] '두 교황' : 진보와 보수가 만나는 지점에서의 인간적 성찰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감독의 2019년 작품 ‘두 교황’(The Two Popes)은 단순한 종교 영화를 넘어 선다. 이 작품은 가톨릭교회 역사상 전례 없는 상황(생존한 전임 교황과 현임 교황이 공존하는)을 배경으로, 진보와 보수라는 상반된 이념이 어떻게 인간의 따뜻함 속에서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철학적 드라마다.
두 세계관의 충돌과 융화
영화는 2005년 교황 선출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독일 출신의 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와 아르헨티나 출신의 호르헤 베르골리오(프란치스코 교황)는 교황청이라는 무대에서 만나지만, 그들이 대변하는 가치관은 극명하게 대조된다.
베네딕토 16세는 전통과 교리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의 화신이다. 그는 라틴어 미사를 선호하고, 교회의 권위와 위계질서를 강조한다. 독일 출신 신학자답게 철저하고 원칙적이며, 변화보다는 전통의 수호를 우선시한다. 안소니 홉킨스의 절제된 연기는 이런 베네딕토의 경직성과 동시에 그 이면에 숨겨진 깊은 고뇌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반면 프란치스코는 변화와 개혁의 상징이다. 아르헨티나의 빈민가에서 사목했던 그는 교회가 가난한 자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믿는다. 축구를 좋아하고, 탱고를 출 줄 아는 그는 권위보다는 친근함을, 격식보다는 진정성을 추구한다. 조너선 프라이스는 이런 프란치스코의 인간적 매력을 따뜻하게 구현해 낸다.
베네딕토 16세: 권위 뒤에 숨겨진 영혼의 고뇌
영화는 베네딕토 16세를 단순한 보수 꼰대가 아닌, 깊은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으로 그려낸다. 그의 가장 큰 고뇌는 하나님과의 소통 단절이다. 교황이 되기 전까지는 신학자로서 확신에 찬 신앙생활을 했지만, 교황직을 수행하면서 점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된다.
"주님이 침묵하신다"는 그의 절규는 영적 지도자로서의 정체성 위기를 드러낸다. 더욱 그를 괴롭히는 것은 가톨릭교회를 뒤흔든 성직자 성추문 스캔들이다. 교회를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내린 여러 결정들이 오히려 피해를 키웠고, 이는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안겨준다. 베네딕토는 자신이 교회의 권위를 지키려다 정작 교회의 본질을 훼손했다는 자책에 시달린다.
영화에서 그가 피아노를 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음악을 통해서만 그는 잠시나마 내면의 평화를 찾는다. 하지만 곧이어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그의 모습은 권력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다. "나는 더 이상 양들을 이끌 힘이 없다"는 고백은 권위적 외모 뒤에 숨겨진 깊은 무력감의 표출이다.
프란치스코: 과거의 그림자와 씨름하는 영혼
프란치스코 역시 겉으로 보이는 친근한 모습과 달리 깊은 내면의 상처를 안고 있다. 그의 가장 큰 트라우마는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시절의 경험이다. 당시 예수회 관구장이었던 그는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군부정권과 타협하는 선택을 했다.
영화는 플래시백을 통해 젊은 베르골리오가 군부 관계자들과 만나는 장면을 차갑고 무표정하게 그려낸다. 교회의 안전을 위해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 했던 그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동료 신부들을 고문과 죽음으로 내몰았다. 특히 사회정의를 위해 활동하던 두 예수회 신부가 납치되어 고문당할 때, 그들을 구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그를 평생 괴롭힌다.
이후 그가 빈민가로 들어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며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한 것은 단순한 진보적 신념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과오에 대한 처절한 속죄이자, 동료들의 뜻을 계승하려는 몸부림이었다. "나는 겁쟁이였다"는 그의 고백은 자신의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이면서 동시에 깊은 자책의 표현이다.
인간의 물욕과 무욕 사이에서
두 교황의 내면 갈등은 결국 인간의 물욕과 무욕 사이에서 벌어지는 싸움이다. 베네딕토는 바티칸의 화려함과 전통적 권위 속에서 살아가지만, 실상 그는 그 모든 것에 지쳐 있다. 권력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것은 영적 공허함과 도덕적 부담감이다.
바티칸 은행의 부패 스캔들, 성직자들의 성추문, 교회 내부의 권력 다툼 등 세속적 욕망들이 만들어낸 추악한 현실 앞에서 그는 무력감을 느낀다. 그의 교황직 포기는 이런 세속적 권력에 대한 거부이자, 진정한 신앙으로 돌아가려는 무욕의 선택이다.
프란치스코 역시 물질적 욕망을 거부한다. 그는 화려한 교황청 대신 소박한 숙소를 선택하고, 고급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하지만 그의 검소함은 단순한 청빈이 아니라, 과거 자신이 추구했던 안전과 안정에 대한 욕망이 가져온 비극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종교개혁의 새로운 의미
이 영화는 종교개혁을 단순히 제도의 변화가 아닌, 인간 내면의 성찰과 회개의 과정으로 재해석한다. 프란치스코가 제시하는 개혁은 "변화(Change)"이지 "타협(Compromise)"이 아니라는 그의 명대사처럼, 원칙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시대의 요구에 응답하려는 노력이다.
베네딕토 역시 고정관념과 달리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그는 프란치스코에게 "당신이 옳았다"고 인정하며, 자신의 사임이 교회를 위한 최선의 선택임을 받아들인다. 이는 진정한 종교개혁이 외부의 강요가 아닌 내적 성찰에서 시작됨을 보여준다.
고해성사: 영혼의 치유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두 교황이 서로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장면이다. 베네딕토는 자신이 교회를 위한다는 명분 하에 내린 잘못된 결정들을 고백하고, 프란치스코는 아르헨티나 시절의 정치적 선택으로 인한 죄책감을 털어놓는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은 더 이상 교황과 추기경이 아니라, 상처받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난다. 서로의 죄를 용서해 주는 이 순간, 그들은 각자가 안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다. 권위와 위계를 넘어선 이 진정한 만남은 치유와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진보와 보수의 조화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진보와 보수를 대립적 관계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교황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결국 같은 목적지인 ‘하나님의 사랑과 인류의 구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베네딕토는 프란치스코의 개방성을 배우고, 프란치스코는 베네딕토의 신학적 깊이를 존중한다. 그들이 함께 피자를 먹고 축구를 보며 탱고를 추는 장면들은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는 인간적 유대감을 보여준다. 특히 베네딕토가 프란치스코와의 대화에서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게 되는 장면은, 진정한 소통이 어떻게 영적 치유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준다.
영화적 완성도와 의미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감독은 실제로는 없었던 두 교황의 만남을 허구로 창조했지만, 그 대화들은 예술적 진실성을 갖는다. 안소니 홉킨스와 조너선 프라이스의 탁월한 연기는 두 교황의 외모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낸다.
영화는 종교를 떠나서도 보편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지,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의 연약함이 오히려 어떻게 공감의 다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두 교황’은 분열과 갈등의 시대에 대화와 이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품이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 인간의 본질적 동질성을 발견하게 만든다. 두 교황이 각자의 내면 갈등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서로를 용서하는 과정은, 진정한 화해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이 영화는 완벽한 지도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약함과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용기가 진정한 리더십임을 말한다. 베네딕토와 프란치스코 모두 과거의 실수와 한계를 안고 있지만, 그것을 직시하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더욱 인간적이고 깊이 있는 지도자로 성장한다.
종교적 신념을 떠나 모든 관객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이 작품은, 우리 시대의 갈등과 대립을 넘어설 수 있는 지혜를, 그리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