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문무의 영화로 세상읽기 #14] '카트' :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와 현실 고발

2025-10-17     유석하 논설위원
이미지 / Whisk 생성

2014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의 44주기에 맞춰 개봉된 영화 '카트'는 한국 상업영화사상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부지영 감독이 연출하고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 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단순한 허구적 드라마가 아닌, 2007년 이랜드 그룹의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 대량해고 사건이라는 뼈아픈 현실을 바탕으로 한 실화 영화다.

대형마트, '고용구조의 백화점'이 된 현실

영화 속 '더 마트'는 현실의 대형마트를 그대로 반영한다. 한국의 대형마트는 "고용구조의 백화점"이라 불릴 만큼 복잡한 고용구조를 갖고 있다. 전체 직원 800명 중 마트 직접고용 노동자는 200명 남짓이고, 이마저도 정규직은 60명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협력업체, 파견업체, 임대매장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어 '각종 고용구조의 백화점'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러한 복잡한 고용구조는 노동자들의 집단적 연대를 어렵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다. 근무 시간과 휴일이 모두 달라 같은 매장에서 일해도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없고, 소속 회사가 달라 공통의 이해관계를 형성하기 어렵다. 이는 자본이 의도적으로 구축한 '분할 지배' 전략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비정규직법과 대량해고의 모순

영화의 배경이 된 2007년 홈에버 사태는 비정규직보호법 시행과 맞물려 일어난 참혹한 역설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오히려 대량해고의 빌미가 된 것이다. 이랜드 그룹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법 조항을 피하기 위해 1,000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했다.

이는 법의 취지를 완전히 무시한 탈법적 행위였지만, 자본의 논리 앞에서 노동자들의 생존권은 쉽게 무시되었다. 영화 속 선희(염정아)가 정규직 전환을 눈앞에 두고 해고 통지를 받는 장면은 이러한 현실의 잔혹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0.5시간 계약제의 기형적 착취구조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가장 기형적인 착취 중 하나가 바로 '0.5시간 계약제'다. 이는 실제 1시간 단위로 근무하면서도 계약서상으로는 30분 단위로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30분씩의 무급 노동이 강요되며, 이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추가적인 임금 착취를 가하는 악랄한 수법이었다.

홈플러스노조 김진숙 본부장의 증언에 따르면, 이러한 기형적 계약은 "벼룩의 간을 빼먹는" 수준의 착취였다.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는 노동자들의 임금에서 어마어마한 액수를 빼 먹어온 것이다. 이는 대형마트가 어떻게 노동자들을 체계적으로 착취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감정노동과 신체적 착취의 이중고

대형마트 계산원들은 하루 300-500명의 고객을 상대하며 극도의 감정노동에 시달린다. 회사는 "빨리 찍어라, 정확히 찍어라, 회원카드 유치해라"는 세 가지를 동시에 요구하지만, 정작 고객의 불만이나 클레임이 발생하면 노동자를 전혀 보호해 주지 않는다. 관리자들은 무조건 고객 편을 드는 반면, 매뉴얼대로 일한 노동자들만 비난받는 구조다.

신체적 착취도 심각한 수준이다. 20-30kg에 달하는 생수나 쌀포대를 들었다 놨다 하는 업무를 중년 여성 노동자들이 담당해야 하는 현실은 충격적이다. 그 결과 어깨, 손목, 팔꿈치 등 온몸에 성한 데가 없고, 부항 자국을 달고 살며 손목 보호대를 차고 다녀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노조 설립과 탄압의 악순환

영화에서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투쟁하는 과정은 현실에서도 동일하게 재현되었다. 실제 홈플러스 노조는 2013년 회사 영화동아리에서 시작되어 설립 첫날에만 100여 명이 가입하는 폭발적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회사 측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노조 간부들에 대한 사찰과 회유, 협박이 이어졌고, 각종 부당노동행위가 자행되었다.

이마트의 경우 노조 설립 과정에서 17명이 검찰에 송치되는 등 더욱 노골적인 탄압이 이루어졌다. 신세계그룹의 불법사찰과 노조설립 방해 책동은 한국 대기업들이 노동자들의 기본권마저 짓밟으며 이익을 추구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비정규직 차별의 구조적 문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도소매업 부문 기업의 간접고용을 포함한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40.9%에 달한다. 이마트 30.9%, 롯데쇼핑과 홈플러스는 더 높은 비율을 보인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동일한 업무를 하면서도 임금, 복지, 고용안정성 모든 면에서 차별받는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도 "반찬값 벌러 나왔다"는 사회적 편견에 시달린다. 하지만 실제 조사 결과 대부분이 가계의 주요 소득원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남편이 택시운전이나 자영업, 무직인 경우가 많아 쉽게 그만둘 수 없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

영화의 한계와 의의

영화 '카트'는 몇 가지 한계를 갖는다. 결말이 다소 어수룩하게 처리되었고, 복잡한 현실을 2시간 분량에 담다 보니 깊이 있는 분석보다는 감정적 호소에 의존하는 면이 있다. 또한 814,795명의 관객을 동원했지만 손익분기점 160만 명에는 미치지 못해 흥행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의의는 흥행 성공 여부로 평가될 수 없다. 한국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 젊은 관객들에게 노동 현실을 알릴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침묵 속에 묻혀있던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알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여전히 진행 중인 현실

영화 개봉 10년이 지난 지금도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새벽 배송, 야간 노동이 더욱 늘어났고,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휴식권은 더욱 위협받고 있다. 정부는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을 완화해 주면서도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화 '카트'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대형마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며,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카트를 끌고 용역 깡패들에게 돌진하는 마지막 장면은 절망적이지만, 동시에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 모두가 함께 밀어가야 할 카트인 것이다.

사회평론가/(전)인천대 교수/사회학 박사.사회복지학 박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