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준의 신중년 인생3모작 #10] 신중년 정책 제안 - 진짜 행복한 노후는 무엇일까

- 돈보다 마음이 먼저 늙는다 -

2025-10-13     김한준 논설위원
청년은 기술을, 신중년은 경험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사회적 멘토링 구조, 이미지 / DALL·E 생성

퇴직을 앞둔 사람들을 상담하다 보면, 그들이 공통으로 묻는 말이 있다.

“행복한 노후는 어떤 걸까요?”

대부분은 건강과 돈을 꼽는다. 하지만 막상 그 두 가지를 갖췄다고 해도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이는 많지 않다. 퇴직을 하면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 믿었지만, 그 이후의 삶은 예상보다 더 길고, 더 낯설다.

필자는 여러 기관의 생애설계 교육에서 수많은 중장년을 만났다. 강의 시작 전 “퇴직 후 삶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대부분은 자신 있게 손을 들지 못한다. 자료로 보면, 인사혁신처의 〈퇴직준비 길라잡이〉나 공무원연금공단의 ‘미래설계 50+ 과정’이 4대 영역(일, 활동, 관계, 재무)을 점검하라고 안내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진단’이 아니라 ‘점검 항목 외우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교육이 삶을 바꾸는 힘이 되려면, 정보보다 태도와 질문의 전환이 먼저여야 한다.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이 질문 하나가 생애설계의 출발점이다.

퇴직 이후 30년은 ‘남은 시간’이 아니라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준비를 ‘연금·재무·건강검진’으로 한정한다. 실제로 고령층 가구의 노후소득대체율은 OECD 평균보다 20%포인트 이상 낮다. 그렇다고 행복의 온도까지 낮아질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돈보다 살아가는 방식의 설계다. 나 역시 컨설턴트로서 수많은 사례를 접하면서 깨달았다. 사람들은 재무계획보다 ‘삶의 이유’를 잃을 때 더 빨리 늙는다.

한 번은 은퇴를 앞둔 60대 남성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연금이 얼마쯤 나오고, 부동산이 얼마쯤 있으면 안심이 될까요?”

나는 되물었다. “그 돈으로 하루를 어떻게 보내실 건가요?”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는 단순한 재정 불안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잃은 공허’가 숨어 있었다. 행복의 본질은 돈의 크기가 아니라 하루를 주도하는 감각, 즉 ‘능동성’에 있다.

공직에서 정년퇴임 후에도 봉사활동을 이어간 한 분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는 다문화가정의 아동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다시 교사로 돌아왔다”고 했다. 내가 그 현장을 함께하며 느낀 것은, 행복은 거창한 목표에서 오는 게 아니라 ‘다시 쓰임 받는 기쁨’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았고, 그것이 곧 그의 두 번째 인생의 나침반이 되었다.

이렇듯 행복한 노후의 조건은 소득이 아니라 소속감, 그리고 자신이 여전히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심리적 존엄감’이다. 하지만 현실의 교육 프로그램은 여전히 연금과 창업 정보 중심으로 운영되고, 사람들은 “이해는 했지만, 내 삶과는 먼 이야기”라며 교실을 나선다. 나는 늘 그 지점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노후 설계 교육이 ‘은퇴 이후의 기술서’가 아니라 ‘삶의 철학서’가 되어야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

앞으로의 노후정책은 단순한 제도 안내를 넘어 행복역량 교육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퇴직 1년 전이 아니라 40대 중반부터 감정 관리, 관계 회복, 자기돌봄, 디지털 역량 등을 배우는 통합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또한 공공기관의 퇴직자 교육 과정도 연금·창업 중심에서 벗어나, “다시 배우고, 나누고, 연결되는 삶”을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로 바뀌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기업과 지역사회, 교육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노후행복 플랫폼’이 구축된다면, 퇴직 이후의 불안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진짜 행복한 노후는 멀리 있지 않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하고, 하루 한 사람에게 안부를 전하고, 한 가지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 이 단순한 세 가지 습관이 노후의 품격을 결정한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다시 배우는 시간’이며, 행복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돈보다 마음이 먼저 늙지 않게, 오늘 하루의 작은 실천이 내일의 노후를 단단하게 만든다.

퇴직 은퇴설계 전문가 |LH공사 미래설계지원센터장(전) | 평생교육학 박사 | 논설위원 김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