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문무의 영화로 세상읽기 #12] 진실을 향한 펜의 힘 : 영화 '스폿라이트'와 저널리즘의 사명

2025-10-13     유석하 논설위원
이미지 / whisk 생성

2015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 ‘스폿라이트’는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현대 저널리즘의 본질과 의미를 되묻는 작품이다. 톰 매카시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2002년 보스턴 글로브 신문사의 '스폿라이트' 팀이 가톨릭 교회 내 조직적인 아동 성추행 사건을 파헤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화려한 액션이나 극적인 반전 대신, 묵묵히 진실을 추적하는 기자들의 모습을 통해 언론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침묵의 카르텔을 깨뜨린 용기

영화는 2001년 보스턴 글로브에 새로 부임한 편집장 마티 배런(리브 슈라이버 )이 가톨릭 신부의 성추행 사건에 주목하면서 시작된다. 배런은 가톨릭 신자도 보스턴 토박이도 아닌 외부인으로서, 지역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관습과 침묵의 카르텔에 균열을 가한다. 이는 저널리즘에서 '거리 두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설정이다.

스폿라이트 팀의 팀장 월터 로빈슨(마이클 키턴), 기자 마이클 레젠데스(마크 러펄로), 사샤 파이퍼(레이철 맥아덤스)는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에 접근한다. 로빈슨은 보스턴 사회의 인맥을 활용해 구조적 은폐의 실체를 파헤치고, 레젠데스는 법원 기록과 공문서를 통해 객관적 증거를 수집하며, 파이퍼는 피해자들과의 직접적인 인터뷰를 통해 사건의 인간적 면모를 드러낸다.

시스템적 은폐의 충격적 실체

영화가 드러내는 것은 단순히 몇몇 '일탈한' 신부들의 개인적 범행이 아니다. 보스턴 교구 전체가 체계적으로 가해 신부들을 다른 교구로 옮기며 사건을 은폐해왔다는 조직적 범죄의 실체다. 보스턴 지역에만 약 90명(전체 신부의 6%)의 가해 신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충격적 사실이 밝혀진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은폐가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역 법조계, 경찰, 언론, 심지어 피해자 가족들까지도 '더 큰 善'이라는 명목하에 침묵했다. 1976년 존 조한 신부 사건에서 보듯이, 체포된 가해자가 조용히 풀려나고 사건이 묻히는 과정에는 사회 전체의 묵인이 있었다. 이는 권력과 권위 앞에서 진실이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섬뜩한 현실이다.

바티칸의 늦은 사과와 그 한계

보스턴 글로브의 보도가 세상에 나온 후, 가톨릭 교회 최고위층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2002년 4월, 교황 요한 바울 2세는 바티칸으로 미국 추기경들을 소집하여 성추행 스캔들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교황은 "성적 학대는 모든 기준으로 볼 때 잘못된 것이며 사회가 범죄로 여기는 것이 옳다"며 "하나님 눈에도 끔찍한 죄"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사과에는 모순이 있었다. 교황은 "젊은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자들이 성직에 발을 붙일 곳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기독교적 회개의 힘을 잊을 수 없다"며 가해 신부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는 근본적 해결책보다는 여전히 내부 수습에 치중하는 교회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6년 후인 2008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즉위 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해 다시 한번 공식 사과를 했다. 이는 문제의 심각성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러나 이러한 교황청의 사과들이 피해자들과 사회에 얼마나 실질적인 위로와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저널리즘의 본질과 책임

‘스폿라이트’가 탁월한 점은 기자들을 영웅으로 미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도 과거 이 문제를 간과했던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다. 로빈슨이 1993년 변호사로부터 받았던 20명의 가해 신부 명단을 제대로 추적하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언론계의 자기성찰을 담고 있다. 이는 저널리즘이 완벽한 기관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봐야 하는 인간적 영역임을 보여준다.

영화는 또한 탐사보도의 어려움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9·11 테러로 인해 조사가 중단되고, 경쟁지의 특종 우려로 성급한 보도를 고민하며, 가톨릭 사회의 압력에 맞서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들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특히 각 기자들이 개인적으로 겪는 갈등—파이퍼가 할머니와 함께 교회에 갈 수 없게 되고, 캐럴이 집 근처의 가해 신부 치료시설을 알게 되면서도 침묵해야 하는—은 진실 추구의 개인적 비용을 보여준다.

현대적 의미와 성찰

이 영화가 2015년 개봉 당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단순히 과거 사건을 다뤘기 때문만이 아니다.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매체가 전통 언론을 위협하는 시대에, 진정한 저널리즘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되묻고 있기 때문이다. 클릭 수와 속보 경쟁에 매몰된 현대 언론 환경에서, 몇 달간의 치밀한 탐사와 검증을 통해 진실을 밝혀내는 스폿라이트 팀의 모습은 저널리즘의 원점을 상기시킨다.

영화 마지막에 제시되는 텍스트는 더욱 충격적이다. 보스턴 글로브의 보도 이후 미국 105개 지역과 전 세계 101개 지역에서 유사한 성직자 학대 사건이 폭로되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보편적이고 구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로 추기경이 사임 후 오히려 승진했다는 사실은 조직의 자정 능력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진실의 빛을 비추는 스폿라이트

영화 제목인 '스폿라이트'는 무대에서 특정 부분을 밝게 비추는 조명을 의미한다. 이는 저널리즘의 역할을 완벽하게 은유한다. 어둠 속에 숨겨진 진실에 빛을 비춰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언론의 사명이다. ‘스폿라이트’는 이러한 저널리즘의 본질적 기능을 담담하면서도 강력하게 보여준다.

마크 러펄로, 마이클 키턴, 레이철 맥아덤스 등 출연진들의 절제된 연기는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부각시킨다. 감정적 호소나 선정적 연출 대신, 사실의 힘만으로 관객을 설득하는 이 영화는 진정한 의미에서 '저널리즘 영화'라 할 수 있다.

교황청의 공식 사과들이 보여주는 것은 언론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다. 수십 년간 침묵 속에 묻혀있던 진실이 한 신문사의 끈질긴 탐사보도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자, 세계 최고 권력기관 중 하나인 바티칸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형식적 사과의 한계와 근본적 변화의 어려움도 드러났다.

결국 ‘스폿라이트’는 권력의 어둠을 밝히는 언론의 역할과 그것이 민주주의에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는 오늘날 가짜뉴스와 정보 조작이 난무하는 시대에 더욱 절실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