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준의 신중년 인생3모작 #9] 신중년 정책 제안 - AI·ESG 시대, 신중년의 두 번째 전문직

2025-09-29     김한준 논설위원
청년은 기술을, 신중년은 경험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사회적 멘토링 구조, 이미지 / DALL·E 생성

“스마트폰 앱을 배우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습니다.”

경기도의 한 50대 여성은 중장년내일센터의 디지털 리터러시 과정에 참여하며 이렇게 말했다. 평생 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맡았던 그는 스마트폰 뱅킹조차 서툴렀지만, 몇 주간의 교육을 거치자 손주와 영상통화를 하고, 온라인 쇼핑몰 강좌에도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짧은 경험은 신중년이 단순히 ‘재취업 대상자’가 아니라, 새로운 전문직을 설계해야 할 주체임을 선명히 보여준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가 운영하는 신중년 프로그램은 다양하지만, 여전히 단순 사무보조·경비·제조 보조 등 전통적 직종에 머무르는 한계가 뚜렷하다. 고용노동부가 2025년 3월부터 시행한 ‘중장년 경력지원제’는 1~3개월 유급 일경험을 제공하고, 참여자에게 월 최대 150만 원, 기업에는 운영수당 월 최대 40만 원을 지급한다(고용노동부 보도자료, 2025.3). 새로운 일터를 경험하게 한다는 의미는 있지만, 여전히 단기적이고 소모적인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KISED)이 운영하는 ‘중장년 기술창업센터’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창업 아이디어 발굴부터 교육·보육·사업화까지 전 주기를 지원하며, 중장년의 경험을 새로운 비즈니스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KISED 공고, 2024). 그러나 전국적으로 몇몇 거점에 불과해 확산성에 제약이 따른다.

이 현실은 신중년 정책이 여전히 ‘과거형 일자리’의 틀에 갇혀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시대는 이미 AI, ESG, 디지털 전환이라는 새로운 파고 위에 있다. 기업은 ESG 경영을 강화하고, 지역사회는 환경과 돌봄 문제 해결을 위한 인재를 찾고 있으며, 디지털 사회는 세대 간 격차를 메울 연결자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신중년이 이 영역에서 제2, 제3의 전문직을 창출하지 못한다면, 정책은 또다시 단발성 생계형 지원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따라서 정책의 방향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해야 한다. 첫째, 디지털·AI 기초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NILE)의 ‘디지털 문해 교원 연수’(2024)는 좋은 선례다. 이를 신중년 기본 과정에 편입시켜 모든 세대가 AI 활용, 데이터 이해, 온라인 협업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순한 기기 사용자가 아니라 ‘디지털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둘째, ESG·환경·돌봄·문화복지 분야의 신직종 트랙을 개척해야 한다. 산업화 시대에 축적한 경험을 가진 신중년은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영역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을 수 있다. 지역 환경 모니터링, 돌봄 코디네이터, 문화복지 매니저와 같은 직종은 청년과 협업하며 지역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유망한 분야다.

셋째, ‘디지털 멘토’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청년은 기술에 능숙하지만 경험이 부족하고, 신중년은 경험은 풍부하지만 기술 적응력이 떨어진다. 양 세대를 연결하는 구조를 만든다면, 신중년은 지혜와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청년은 최신 기술을 전수하는 상호 멘토링 모델이 가능하다.

고전 『중용』에는 “시의(時義)를 아는 것이 군자의 도”라는 구절이 있다. 시대의 의리를 아는 것이 바른 길이라는 뜻이다. 신중년 정책도 그러하다. 과거형 직종에 머무는 지원은 더 이상 답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ESG 시대의 흐름을 읽고, 신중년을 새로운 전문성의 중심에 세우는 일이다.

“평생현역”은 단순히 오래 일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 변화에 맞게 자신을 재설계하고, 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과정이다. 신중년이 두 번째, 세 번째 전문직을 설계할 수 있도록 국가가 든든히 뒷받침한다면, 그것은 곧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높이는 새로운 에너지가 될 것이다.

퇴직 은퇴설계 전문가 |LH공사 미래설계지원센터장(전) | 평생교육학 박사 | 논설위원 김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