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문무의 영화로 세상읽기 #4] '소수의견'으로 본 한국 검찰의 민낯과 개혁의 필요성
2015년 개봉한 영화 '소수의견'은 단순한 법정 드라마를 넘어 한국 사회의 권력구조와 검찰조직의 구조적 문제점을 날카롭게 해부한 작품이다. 영화는 "이 영화는 실화가 아니며, 인물은 실존하지 않습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하지만, 실상은 2009년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한 현실 그 자체의 이야기다.
용산 강제 철거 과정 중 철거민과 경찰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한 경찰관이 사망한다. 경찰은 철거민을 살인죄로 기소하려 하지만, 사건의 진실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이어진다. 젊은 인권 변호사 진원(윤계상 분)은 철거민 아들의 국선 변호를 맡게 되며, 이 사건이 단순한 개인 범죄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모순과 국가폭력의 문제임을 밝히려 한다. 검찰과 경찰은 사건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려 하고, 언론 역시 진실보다는 권력의 입맛에 맞는 보도만 내보낸다.
‘소수의견’의 의미
변호사는 좌절 속에서도 진실을 밝히려 고군분투하고, 정의를 지키려는 시민들과 함께 싸우는 과정에서 점차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다. 진원은 거액의 배상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을 법적으로 인정받는 것 자체에 초점을 둔다. 그래서 상징적으로 “국가배상 청구 금액 100원”을 제시한다.
이 100원은 금전적 보상보다는, “국가가 철거민들의 인권을 침해했고, 그 책임을 법정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받겠다”는 의미적 소송 가액이다. 결국 이 영화는 ‘국가권력이 소수자의 권리를 어떻게 억압하는가’와 ‘소수의 목소리를 끝까지 지켜내려는 노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화의 배경이 된 2009년 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사건은 한국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긴 참사였다.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한 철거민 30여 명이 적정 보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던 중, 경찰의 강제 진압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해 철거민 5명과 경찰 특공대원 1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개발 논리에 밀려나는 서민들의 절규였고, 국가권력의 폭력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징적 사건이었다.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권력 앞에서 굴복하지 않는 '소수의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국가폭력의 의미와 본질
국가폭력이란 "국가가 국가의 뜻에 반하는 집단이나 개인에 대해서 공권력을 과하게 사용하거나 착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검찰이 행하는 국가폭력은 물리적 폭력보다도 교묘하고 치명적이다.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를 거치며 형성된 검찰의 권위주의적 제도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국가폭력의 근원이다.
검찰의 국가폭력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수사 과정에서의 고문과 강압적 자백 강요다. 둘째, 정치적 목적을 위한 사건 조작과 증거 조작이다. 셋째, 기소독점권을 이용한 선택적 기소와 정치적 보복이다. 이러한 국가폭력은 개인의 인권을 짓밟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치명적 독소가 되어왔다.
한국 검찰 국가폭력의 역사적 사례들
한국 검찰의 국가폭력 중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간첩 조작 사건들이다. KBS 탐사보도부의 조사에 따르면, '재심 무죄' 간첩 사건만 137건에 달한다. 간첩으로 몰려 사형까지 당한 고 오경무씨의 경우 2024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는 국가가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조작해 생명까지 앗아간 참혹한 국가폭력의 실례다.
검찰과 수사기관의 고문을 통한 자백 강요는 한국 국가폭력의 대표적 사례다.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서병호씨 사건은 1971년 간첩 혐의로 19일간 고문을 당한 후 12년간 수감된 사례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뉴스타파가 추적한 김승효씨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자백'의 실제 주인공인 김승효씨는 2018년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재판부는 고문 사실에 대해서는 명시적 판단을 회피했다. 이는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이 겪는 이중고를 보여준다.
현대적 국가폭력: 김학의 사건
검찰의 국가폭력은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김학의 사건은 현재의 검찰이 어떻게 권력과 유착해 국가폭력을 자행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김학의 사건은 권력형 성범죄·뇌물수수 의혹 사건이다. ‘별장 성접대 의혹’과 ‘검찰 봐주기 수사 논란’이 핵심이며, 최종적으로 무죄 확정되었지만 사회적으로는 검찰 개혁·성범죄 수사 방식 개선 요구를 촉발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정치검찰의 부패와 제 식구 봐주기, 권력 유착이 어느 정도인지를 대한민국 사회에 적나라하게 알린 대표 사례이다. 기소독점권을 이용한 선택적 기소의 교과서적 사건이라 하겠다.
사실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 작업의 유일한 성과로 기대를 모은 김학의 사건 재수사는 오히려 김학의에게 확실한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검찰이 스스로를 수사하는 셀프 수사의 한계와 함께, 권력기관끼리의 유착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준다.
검찰의 특권의식과 조직문화의 문제점
영화 속 홍검사(김의성 분)로 대변되는 한국 검찰의 모습은 현실의 검찰조직이 지닌 구조적 문제점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기소독점주의로 무장한 검찰은 "국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며, 진실보다는 조직의 논리를 우선시한다. 검찰이 오랫동안 특권의식에 젖어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이다.
영화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사건을 조작하는 검찰의 민낯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현실에서도 검찰은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등을 통해 정치적 중립성을 잃고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검찰의 기소독점권은 "기소하지 않는 권한"을 통해 제 식구나 권력층에게는 관대하게, 일반 시민에게는 가혹하게 적용되는 이중잣대의 근거가 되어왔다. 이는 민주공화정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다.
한국 검찰조직의 구조적 문제점
한국 검찰의 문제점은 조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나타난다. 첫째,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보유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권력집중 구조다. 둘째, 정치권력과의 유착을 통한 인사 시스템으로 인한 정치적 중립성 상실이다. 셋째, 언론과의 밀착을 통한 여론 조작과 사건 프레이밍이다.
2025년 현재 검찰개혁은 중요한 정치적 화두가 되고 있다. 여당이 제시한 검찰개혁법의 핵심은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다. 기존 검찰을 해체하고 기소 전담 공소청과 수사 전담 중수청을 신설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해 검사가 직접 수사를 보완하거나 경찰에 요구할 수 있는 보완수사권(검찰의 보강조사권)을 완전 폐지하는 내용도 개혁안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검찰개혁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여전하다. 개혁론자들은 검찰의 권력 분산과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반대론자들은 수사 효율성 저하와 국민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진정한 개혁의 방향성
영화 '소수의견'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권력의 논리에 맞서는 소수의 목소리가 존재해야 하고, 이들의 의견이 묵살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개혁은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검찰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기관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 권력 분산을 통한 견제와 균형 시스템 확립, 투명한 수사와 기소 과정의 확립이 필요하다.
국가폭력의 역사를 돌아보면, 검찰개혁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진다. 국가폭력은 일반적으로 합법적 테두리를 벗어난 국가의 물리력 행사로 인해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이지만, 권리는 소멸해도 책임은 소멸하지 않는다. 국가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 되더라도, 국가의 책임은 시효나 시간에 의해 지워지지 않는다. 국가는 끝까지 그 책임을 인정하고, 진실을 밝히고,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소수의견’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하여
용산참사로부터 15년이 지났지만, 영화 '소수의견'이 제기한 문제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검찰의 특권의식과 권력 남용, 사건 조작과 진실 은폐, 그리고 국가폭력의 문제는 계속해서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간첩 조작 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희생자들, 고문과 강압으로 인생을 망친 피해자들, 그리고 김학의 사건에서 드러난 정치검찰의 부패와 제 식구 봐주기, 권력 유착의 실상까지, 검찰이 자행한 국가폭력의 역사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청산해야 할 과제다.
진정한 검찰개혁은 조직의 해체나 재편을 넘어서, 검찰이 권력이 아닌 국민을 바라보는 근본적 시각 전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영화 속 윤진원 변호사가 보여준 것처럼, 다수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는 소수의견이 존중받는 사회,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이 진정한 명예회복을 받을 수 있는 사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민주주의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