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준의 신중년 인생3모작 #7] 정년과 은퇴를 혼동하지 마라
- 정년은 쉼표, 인생 3모작은 시작 -
“형님, 이제 은퇴하신 거예요?”라는 질문에 “정년은 했지만 은퇴라 하긴 아직 일러”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 짧은 대화는 한국 사회 중장년층이 직면한 혼란을 상징한다. 정년과 은퇴가 같은 말처럼 쓰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정년은 법과 제도가 정해놓은 직장의 마지막 날일 뿐, 은퇴는 노동과 지면 게재용으로는 짧은 캡션 문구도 함께 정리해드릴까요?사회적 역할을 마무리하는 인생의 장기적 과정이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 준비 없는 전환기를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2024년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55세 이상 인구의 71.8%가 “계속 일하고 싶다”고 응답했고, 희망 근로 연령은 평균 73.3세였다. 제도상 정년은 60세지만 실제 기대치는 그보다 10여 년 이상 길다. 정년과 은퇴 사이에 놓인 10~15년의 간극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인생 3모작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정년을 곧바로 은퇴로 받아들인다. 한국고용정보원 보고서에 따르면 정년퇴직 후 1년 내 재취업에 성공하는 비율은 40% 남짓에 불과하다. 다수는 소득 단절과 사회적 관계 축소를 동시에 겪으며 무기력에 빠진다.
하지만 준비된 전환은 다르다. 공무원연금공단이 펴낸 『100세 시대 퇴직설계』에는 ‘세컨드 잡’을 미리 준비한 사례가 다수 소개된다. 재직 시절부터 평생교육을 수강하고 지역 봉사활동에 참여하며, 꾸준히 네트워크를 다져온 이들은 정년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새로운 역할을 이어갔다. 정년은 끝이 아니라 두 번째 무대의 개막이 된 셈이다. 노사발전재단이 2024년 발표한 사례집에서도 비슷한 경험담을 볼 수 있다. 50대에 퇴직한 한 남성은 용접 기술을 새로 배워 중소기업에 재취업했다. 그는 “정년은 직장의 마지막 날이지만, 내 인생의 첫날은 매일 새로 시작된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는 더욱 시사적이다. 일본은 50세 전후를 ‘세컨드 라이프 준비기’로 규정하고 기업 차원에서 퇴직 전 교육과 전직 지원을 제도화했다. 독일은 직업교육 체계 속에 중장년 재교육 과정을 포함해 정년 이후에도 일정한 노동 참여가 가능하도록 한다. 반면 한국은 아직도 정년과 은퇴를 동일시하며, 준비 없는 공백기를 개인의 몫으로 떠넘기고 있다. 이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면 개인의 불안은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된다.
고전 『논어』에는 “학이불염(學而不厭), 회이불권(誨而不倦)”이라는 말이 있다.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삶이 진정한 성숙이라는 뜻이다. 정년 이후의 삶도 마찬가지다. 배움을 멈추지 않고, 나눔을 중단하지 않는 사람에게 은퇴는 퇴장이 아니라 새로운 개막이 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을 책상 위에 올려 세우며 말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라”는 장면은 정년을 맞은 세대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 걸음 물러서서 다른 각도에서 삶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길이 새롭게 열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바꿔야 할까. 첫째,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년은 일자리의 끝이지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확산해야 한다. 둘째,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단순한 재취업 알선이 아니라, 개인의 적성과 경험을 살려 새로운 분야로 이동하도록 돕는 커리어 전환 훈련이 필요하다. 셋째, 사회참여 플랫폼을 확대해야 한다. 봉사, 멘토링, 창업, 예술 활동 등 다양한 경로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정년 이후를 공백이 아닌 기회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괴테는 “인생은 나이를 세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세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년을 단절의 날로 받아들이면 기회는 닫히지만, 은퇴를 유연하게 설계할 때 기회는 다시 열린다. 사자성어 전환위복(轉禍爲福)은 화를 복으로 바꾼다는 뜻이다. 정년이라는 충격을 인생 재설계의 계기로 삼을 때, 그것은 개인에게는 성숙의 시간이 되고 사회에는 새로운 자산이 된다.
오늘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정년은 끝인가, 시작인가?” 그 답을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당신의 인생 3모작은 공허한 여백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성장의 무대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정년과 은퇴의 구분은 개념 정리가 아니라, 후반전을 살아가는 태도의 문제다. 정년을 두려움이 아닌 가능성의 신호로 읽어내는 순간, 인생은 다시 쓰인다. 그것이 초고령사회로 향하는 한국 사회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인사이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