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준의 신중년 인생3모작 #5] 퇴직 이후, 평생현역의 약속은 진짜일까

– 경력설계와 환류 시스템, 구호를 넘어 실행으로 –

2025-09-02     김한준 논설위원
정년 65세, 재취업 현실을 마주하는 중장년의 시선, 이미지 / DALL·E 생성

“형님, 퇴직하면 뭐 하실 거예요?”

“뭐, 글쎄. 정부에서 평생현역이니, 경력설계니 한다는데… 실제로 현장에서 그게 먹힐까요?”

퇴직을 앞둔 지인과 나눈 짧은 대화가 귓가에 오래 맴돌았다. 정책 보도자료를 보면 그럴듯하다. 인생 3모작, 평생현역, 경력설계 기반 지원체계. 그러나 막상 현장으로 내려가면 여전히 조기퇴직의 불안, 낮은 재취업 전환율, 기업의 부담 호소가 반복된다. “口惠而實不至(구혜이실부지)”, 입으로는 혜택을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닿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정부가 내세운 전략은 분명 진전된 측면이 있다. 계획–준비–운영–평가 환류라는 구조적 틀을 마련하고, 중장년 경력지원제, 평생학습 확대, 중장년내일센터 전국망을 가동했다. 제도적 플랫폼이 없는 과거에 비하면 한 걸음 나아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프레임은 생겼지만, 실행력이 약하다”는 데 있다.

첫째, 정년 65세 상향과 계속고용 제도화 논의는 기업 현장의 저항을 무시한 채 속도만 강조한다. 임금체계 개편과 연동되지 않으면 기업은 인건비 폭탄을 우려할 수밖에 없고, 청년층의 채용 기회가 줄어든다는 반발도 피하기 어렵다. 정년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평생현역’이 아니라 ‘불안정하게 오래’ 일하는 사회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둘째, 경력지원제는 참여수당 중심의 설계로 실제 채용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낮다. 정부는 매뉴얼과 교육 과정에 집중하지만, 정작 기업이 신중년을 고용할 유인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다. 참여자 입장에서는 “체험”에 그치고, 기업 입장에서는 “보조금 단기활용”으로 끝나는 경우가 잦다.

셋째, 사회공헌형 일자리는 아직도 단기 봉사활동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경험과 전문성을 활용해 사회적 가치를 만들기보다는 ‘시간 때우기’ 성격의 프로그램이 많아, 참여자조차 자존감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나온다.

넷째, 평가·환류 시스템 역시 참여율, 수료율 같은 양적 지표 위주다. 중요한 것은 노동시장 잔존율, 소득 유지율, 직업 만족도 같은 질적 성과인데, 이 부분은 여전히 통계 밖에 있다. 숫자만 관리하면 성과는 부풀려지고, 현장 체감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맹점들을 넘어서려면 몇 가지 보완책이 절실하다. 첫째, 정년·계속고용·임금체계를 분리하지 말고 ‘3종 패키지 입법화’를 추진해야 한다. 정년 연장은 임금체계 개편, 직무 재설계, 세제 인센티브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경력지원제는 채용 전환율을 KPI로 삼아야 한다. 일정 비율 이상 채용 전환에 성공한 기업에는 세제 혜택이나 고용보험료 감면 같은 직접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셋째, 사회공헌형 일자리는 ‘봉사’가 아니라 ‘사회적 전문직’ 개념으로 격상해야 한다. 퇴직 공무원의 정책 자문, 은퇴 전문가의 멘토링, 지역 돌봄 기획 등 지속 가능한 역할이 제도화돼야 한다. 넷째, 환류 시스템은 단순한 성과지표 관리가 아니라 데이터 거버넌스로 전환해야 한다. 고용·교육·복지 데이터를 통합한 정부 대시보드를 마련해 개인별 참여와 성과를 추적하고, 정책과 예산을 자동 조정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책은 구호가 아니라 실행에서 평가받는다. 지금처럼 화려한 슬로건만 난무하면 ‘평생현역’은 희망이 아니라 불안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제도의 허점을 직시하고, 세대 간 합의와 기업·정부의 공동 책임을 담보한다면 인생 3모작은 진짜 국가 전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공자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했다. 퇴직 이후의 삶도 마찬가지다. 배움과 경력설계를 지속적으로 익히며 사회와 연결될 때, 비로소 개인은 기쁨을, 국가는 지속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

퇴직 은퇴설계 전문가 |LH공사 미래설계지원센터장(전) | 평생교육학 박사 | 논설위원 김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