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문무의 영화로 세상읽기 #1] ‘카르페 디엠’의 외침, '죽은 시인의 사회'가 던지는 교육의 본질적 질문

2025-08-27     유석하 논설위원
이미지 / DALL·E 생성

1989년 피터 위어(Peter Weir) 감독이 선보인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는 개봉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교육계와 사회 전반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로빈 윌리엄스의 열정적인 연기로 구현된 존 키팅 교사의 모습은 단순한 영화 캐릭터를 넘어 이상적인 교육자의 상징이 되었으며, 전 세계 교육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으로 자리잡았다.

감독인 호주 출신의 거장 피터 위어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자신만의 서정적이고 깊이 있는 연출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944년생인 위어 감독은 '트루먼 쇼', '마스터 앤드 커맨더' 등으로 이미 국제적 명성을 얻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특히 인간의 내면과 사회의 억압적 구조 사이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는 1959년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을 배경으로, 다분히 의도적인 설정을 시도하고 있다. 1950년대 말은 미국이 전후 경제 호황을 누리며 보수적 가치관이 공고히 자리잡은 시대였다. 매카시즘의 여파로 획일성과 순응이 미덕으로 여겨졌고, 개인의 창의성보다는 사회적 안정과 질서가 우선시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명문 사립고등학교 ‘웰튼 아카데미’의 보수적 교육환경은 당시 미국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전통, 명예, 규율, 그리고 최고'를 4대 원칙으로 하는 웰튼 아카데미에 새로운 영어교사 존 키팅이 부임해 오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이 학교는 명문 대학 진학률이 높은 엘리트 사립학교이지만, 동시에 학생들의 개성과 꿈을 억압하는 경직된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키팅 선생은 기존의 주입식 교육방식을 거부하고,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Carpe Diem)' - ‘현재를 잡아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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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인 토드 앤더슨, 닐 페리, 녹스 오버스트리트 등 개성 넘치는 학생들은 키팅의 영향 아래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비밀 모임을 결성한다. 이들은 밤마다 학교 뒷산 동굴에 모여 시를 낭송하고 자신들의 꿈과 열정을 나눈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로운 분위기는, 명문대 진학만을 지향하는 학교와 학부모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닐 페리의 비극적 죽음으로 이어지면서 키팅은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개인의 자아 실현과 사회적 기대 사이의 갈등이다. 닐 페리가 아버지의 하버드 의대 진로 강요에 맞서 연극에 대한 꿈을 추구하다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는 모습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둘째는 전통적 교육과 창의적 교육의 대립이다. 키팅의 파격적인 수업방식은 기존 교육체계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였다. 셋째는 진정한 용기와 순응 사이의 선택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학생들이 책상 위에 올라서며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는 모습은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영화에는 여러 상징적 장면들이 등장한다. 가장 유명한 것은 키팅이 학생들을 복도로 데려가 "카르페 디엠"을 가르치는 장면이다. 그는 진열장 속 오래된 졸업사진들을 가리키며 "지금 이 순간을 잡아라"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시간의 유한성과 현재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 다른 명장면은 키팅이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찢게 하는 장면이다. 시의 가치를 수치로 평가하려는 기계적 접근법에 대한 거부이자, 획일화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라는 메시지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의 "오, 캡틴! 마이 캡틴!" 장면은 월트 휘트먼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 학생들이 키팅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표현하는 동시에 그가 가르친 용기의 실천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클라이맥스다.

35년 전 작품이지만 '죽은 시인의 사회'가 제기한 교육 문제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한국의 교육 현실과 비교해 보면 더욱 그렇다. 웰튼 아카데미의 '전통, 명예, 규율, 최고'라는 4대 원칙은 현재 한국의 많은 교육기관이 추구하는 가치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현재 한국 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주입식 교육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학생들이 교사의 강의를 받아 적는 데만 집중하게 되어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을 기르기 어렵다는 비판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에 과도한 경쟁과 성적 위주의 평가시스템이 학생들의 전인적 발달을 저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들 역시 뼈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키팅 선생의 교육방식이 무조건적으로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영화에서도 그의 자유로운 교육철학이 닐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창의적 교육과 책임감 있는 지도 사이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한다. 현실적으로 교육에는 일정한 구조와 체계가 필요하며, 완전한 자유방임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하는 향수적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 우리가 직면한 교육적 딜레마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력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현재, 키팅 선생이 보여준 교육철학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좋은 성적과 명문대 진학이 교육의 목적일까, 아니면 학생 개인의 잠재력을 발현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목적일까? 이러한 질문은 3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더욱 절실해졌다고 할 수 있다.

'카르페 디엠'이라는 키팅의 외침은 단순히 순간의 쾌락을 추구하라는 메시지가 아니다. 주어진 삶의 한계 속에서도 자신만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용기 있게 행동하라는 메시지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교육철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결국 '죽은 시인의 사회'는 교육이 지식의 전달을 넘어 인간의 영혼을 깨우는 일이어야 한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 키팅 선생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교육자의 자세를 배우고, 동시에 현재 교육시스템의 한계를 성찰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35년이 지나도록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