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환 변호사의 학교폭력 #2] 사실확인서, 한 장의 기록이 아이의 미래를 바꾼다
학교폭력 사건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질문 중 하나는 “결국 증거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사건을 들여다보면, 학교라는 공간의 특수성 때문에 CCTV, 명확한 목격자 진술과 같은 객관적 물증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의 공간은 폐쇄적이고, 갈등은 빠르게 번지며, 증거는 남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단 한 장의 문서, 바로 사실확인서가 사건의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첫 기록이자, 진술의 신빙성을 평가하는 출발점이 바로 이 문서다.
즉 사실확인서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다. 이 문서의 내용이 한 학생의 운명을 좌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의 진술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사건에서, 사실확인서는 거의 유일한 판단 기준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한 문장의 서술이 모호하거나, 추측을 사실처럼 적어 내려간다면, 사건의 전체 구조가 왜곡될 위험이 있다. 실제로 법원에서도 최초 작성된 사실확인서의 진술 신빙성을 매우 높은 비중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최초의 진술은 경험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난 뒤 작성된 수정본은 ‘기억의 변형’ 또는 ‘사후적 방어’로 해석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확인서를 작성할 때는 정확성과 객관성이 절대적이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를 명확히 기재하는 것이 핵심이며, 감정적 평가나 추측성 서술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그랬던 것 같다”라는 모호한 표현보다 “기억한다”라는 단정적 어투가 신뢰도를 높인다. 또한 한 번 작성해 제출한 사실확인서를 나중에 수정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잘못 기재한 사실을 두 줄 긋고 즉시 정정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제출 후 추가 사실확인서를 내는 순간 신빙성은 일부 손상될 수 있다. 마치 건물의 첫 번째 설계도가 틀어지면 이후의 구조 전체가 흔들리는 것과 같다.
문제는 학부모와 학생 모두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학폭위에 출석해 상대방의 사실확인서를 처음 열람하고서야, 예상치 못한 내용에 당황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내 자녀가 작성한 사실확인서만 열람할 수 있고, 다른 학생의 문서는 볼 수 없다. 그렇기에 사실확인서를 처음 작성하는 단계부터 세심한 전략이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학생이 혼자 작성하지 않도록 하고, 부모가 동석하거나 가정에서 충분히 상의한 뒤 제출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학교와 협의해 보호자의 입회권을 보장받는 것도 중요하다. 작은 표현 하나, 시간대 표기 하나가 자녀의 입장을 결정짓는 핵심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사건은 단순한 ‘사실 관계의 다툼’으로 끝나지 않는다. 학폭위의 판단은 생활기록부에 반영될 수 있고, 대학 입시에 영향을 미치며, 한 학생의 사회적 낙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진술의 신빙성을 세우는 일은 단순히 사건을 유리하게 만드는 전략이 아니라, 아이의 미래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방패다. 첫 번째 사실확인서에 기록된 몇 줄의 문장이 학폭위 결정의 무게를 바꾸고, 때로는 그 결정이 학생의 학창 시절 전체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부모와 학생 모두 명심해야 한다.
사실확인서는 단순한 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아이의 목소리이며, 학교폭력 사건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래 남는 증거다. 부모와 학생이 이 한 장의 기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세심하게 접근했는지가, 사건 이후를 살아가는 아이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다. 진술의 신빙성은 우연히 확보되지 않는다. 준비가 곧 보호이며, 첫 문장이 곧 아이의 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