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민 역사를 품은 환대의 도시, 인천의 해외 시민
121명의 선조가 제물포를 떠나면서 시작된 우리 민족의 첫 공식 이민이 120년의 역사를 써 내려오고 있다. 이민 사회는 193개국에 732만여 명으로 규모가 확대되었다. 2023년은 재외동포의 권익을 증진하고 모국과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재외동포청이 신설된 해이다. 이민 역사를 품은 환대의 도시, 인천에 재외동포청이 개청하여 동포를 배웅한 곳에서 다시 그들을 마중하게 되었다.
재외동포는 누구인가?
다른 나라에서 정착해서 그 나라 국민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교포·교민이라고 불러왔다. 교(僑)에는 더부살이한다는 뜻도 있어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동포(同胞)는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자매를 가리키는 말로 같은 나라 또는 같은 민족 사람을 다정하게 이르는 말이다. 재외동포재단법이 제정되면서 공식 호칭이 되었다.
발전한 대한민국은 민족 특유의 성실함과 교육열을 기반으로 이루어 낸 결과물이다. 그 저변에 재외동포의 모국을 향한 애국심이 있었다. 어려움 속에서 독립 자금을 마련하였던 동포들은 전쟁으로 도탄에 빠진 모국에 구호품을 보내주었고, 대한민국의 성장을 위해 해외공관을 마련해 주었으며, 경제개발을 꿈꾸는 모국에 모든 것을 내주었다. 재외동포의 공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현재는 미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민사를 품은 해불양수(海不讓水)의 도시, 인천
1883년 세계를 향해 문호를 개방한 인천은 한반도의 집산지로 기능하여 왔기에, 당시 인천 사람들은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을 뿐 아니라 호기심도 높았다. 1902년 나가사키에서 갤릭호에 오른 102명의 이민자 중 86명이 인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이민 초기 인천의 역할이 중요했음을 보여준다.
도시 발전에는 포용(Tolerance)이 중요하다. 이주민의 도시로서 모든 것을 포용해 온 인천은 한국사회의 모범이 될 것이다. 포용은 배웅하였던 동포들을 다시 마중해 온 인천 사람들의 덕목이다. 한 원로는 인천을 해불양수(海不讓水)의 도시라 소개한다. 어떠한 물도 사양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그 어떠한 것도 모두 받아들이는 도시가 인천이다. 한반도 전역에서 유입된 이들과 함께 힘을 모아 성장해 온 인천은 기회의 땅이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역동성과 포용력을 품은 도시이다.
배웅한 곳에서 마중하다
인천은 한민족의 자긍심으로 성공적인 이민 사회를 형성해 온 동포와 함께 이민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3대 도시로 성장한 인천은 이제 인구 천만의 시대를 열고 행복한 세계 초일류도시로의 항해를 시작하였다.
인천은 동포들과 어우러져 왔다. 사할린 한인 4,346명이 국내에 둥지를 틀 때, 인천은 사할린동포복지회관, 논현동과 삼산동 등에 가장 많은 영주귀국자를 끌어안았다. 연수구 함박마을에는 1만 명에 달하는 재러․재CIS동포들이 지역주민들과 상생하고 있으며, 송도신도시에 글로벌시티를 조성하여 모국에서의 여생을 보내기를 희망하는 동포들을 품에 안았다.
동포들은 인천에 첫발을 디디면서 모국의 문을 열고, 다시 인천의 땅을 밟고 거주국으로 되돌아간다. 새로운 이민자의 삶을 인천에서 꿈꾸며, 모국에서의 '코리안 드림'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인천이다. 인천은 항상 그래왔듯이 동포를 배웅하고 맞이하면서 이민 역사를 품은 환대의 도시로서 새로운 해외 시민과 함께 상생을 실현해 나갈 것이다.
CIS(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독립국가연합) 소련붕괴로 인해 독립 국가가 된 구소련 공화국들의 연합체로 결성된 국제기구. 러시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이 정회원국이다.